에베레스트 트레킹을 떠나는 날이 다음 주 금요일로 다가오고 있다. 지난 주말에는 일정을 챙겨보고 GPS 트랙과 지도등을 챙겨 보았다. 이번 산행의 핵심은 뭐니뭐니 해도 역시 고소증이다. 이를 잘 극복하느냐에 따라서 즐거운 산행이 되느냐 괴로운 산행이 되느냐 결정될 것이다. 트레킹을 시작하는 루클라 비행장이 이미 2,800인데, 나는 이 정도에서 고소를 느껴본 적이 있다.
여태까지 3,000 이상 고지에 올라본 적이 여러번 있는데 그 때 경험을 되새겨 보는 것도 고소 극복에 도움이 될 것이다. 첫 경험은 2006년 7월 키나발루이다. 이 때는 해발 2,000 정도에서 시작하여 3,280 정도에서 하루밤을 자는데 해발 3,200을 넘으면서 뒷골에 뭔가 이상한 느낌이 있었다. 당시에는 고산증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냥 무시해 버렸고 숙소에서는 술도 한 잔 했었다. 숙소에서 방에 들어가면 답답한 느낌이 들었지만 밖에 나오면 괜찮았고 다음날 해발 4,095인 정상까지 왕복하는 데에 별 문제가 없었다. 다음은 2007년 7월 일본 알프스로서 3,100 정도까지 올라가는데 아무 문제 없었다.
처음으로 심각하게 고소를 겪은 것은 2007년 12월 안나푸르나 트레킹이었다. 해발 2,920인 히말라야 롯지에서부터 슬슬 걱정이 되어 자기 전에 두통약을 먹어 두었고 다음날 산행은 천천히 조심해야 한다고 다짐하였는데 경치가 너무 좋았던 바람에 싸악 잊어 버리고 말았다. 오전 중에 해발 3,700인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까지 갔는데 이 때까지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 점심을 먹은 후 갑자기 졸음이 엄습하면서 고소가 오기 시작하였다. 동료들의 강권에 따라서 타의반 자의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4,130)까지 가긴 갔었다. 그런데 숙소인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에 돌아오자마자 저녁 식사도 하지 못하고 그냥 꼬꾸라져서 잤다. 다음날 아침에는 멀쩡해져서 식사하고 하산하는 데에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작년, 그러니까 2009년 2월 다녀온 킬리만자로에서 그야말로 최악의 고소를 겪었다. 첫 날 숙소에 도착하기도 전인 2,800 정도에서부터 이미 뒷골에 뭔가 이상을 느끼기 시작하였고 둘째날 숙소인 3,900 에서는 두통약을 먹었는데 불구하고 밤에 심한 두통에 시달렸다. 다음날에는 해발 4,000을 넘어서면서 급기야 길에서 토하는 사태까지 발생하였는데, 그 이후 두통이나 울렁거림은 거의 없었으나 밥을 먹기가 힘들었다. 하여 거의 속이 비어 있는 상태에서 힘들게 산행을 계속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상을 밟았으니 기적이 아닌가 싶다. 요는 고소증세는 누구에게나 오는 것인데 얼마나 잘 적응하느냐 하는 것이 요체이다. 특히,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서 자신의 상태가 어떻데 될 지 미리 예측할 수 있으면 극복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이번 트레킹 코스를 사전에 면밀히 따져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제 1일 (1월 22일, 금요일): 이 날은 비행기 타고 카투만두에 도착하여 간단하게 시내 관광한다.
제 2일 (1월 23일, 토요일): 비행기를 내리면 루클라 공항이 해발 2,840 인데 오히려 약간 내리막을 걸어서 팍팅(2,610)까지 간다. 도상거리 약 7.9킬로.
제 3일 (1월 24일, 일요일): 남체(3,440)까지 가는데, 강을 따라 가는 동안은 널널하게 가다가 남체에 도착하기 전에 경사가 상당히 심하다. 일차로 조심할 구간이다. 아마도 그 전날 약을 좀 먹어 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안나푸르나에서도 보았지만 이 지역은 강 계곡에 마을이 있는 것이 아니고 능선에 마을이 있다. 따라서 대체적으로 숙소를 떠나면 내리막을 가다가 숙소 이전에 다시 급경사를 오르는 경우가 많다. 전날 숙소인 팍팅은 다행히도 계곡에 위치한다. 도상거리 약 9.8 킬로
제 4일 (1월 25일, 월요일): 이날은 고소 적응일이다. 남들 따라 다니는 것이 상책이겠으나 주위에 높은 곳을 좀 올라갔다 오는 게 좋을 것이다. 남체부터는 에베레스트가 보이므로 산책 삼아서 여기저기 다녀보아야 할 듯 하다.
제 5일 (1월 26일, 화요일): 텡보체(3,867)까지 간다. 이 날도 계곡을 한번 건너는데 계곡을 건너고 나서 급경사를 올라야 한다. 두번째 고소 경계 지역이다. 도상거리 약 9.5킬로.
제 6일 (1월 27일, 수요일): 딩보체(4,352m)까지 가는데 고도가 꾸준히 오르기 때문에 오히려 쉬울 수 있다. 아마도 킬리만자로 트레킹 때 바루푸 가는 길 정도로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이 날은 거의 계곡을 따라가는 길이고 숙소도 계곡에서 그리 먼 것 같지는 않다. 도상거리 약 10.3 킬로
제 7일 (1월 28일, 목요일): 두번째 고소 적응일이다. 고소 적응을 위하여 추쿵까지 다녀오는데 고도가 아주 일정하게 천천히 높아진다.
제 8일 (1월 29일, 금요일): 로브제(4.887m)까지 간다. 중간에 투클라(4.620m)를 지나면서 빙하가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빙하의 발톱부분까지 오르는데 경사가 좀 급해진다. 세번째 고소 경계 지역. 이 날 숙소는 이미 킬리만자로 마지막 숙소인 바루푸보나 200 이상 높은 곳이다. 도상거리는 7.6 킬로
제 9일 (1월 30일, 토요일): 목표인 칼라파타르(5.545m)까지 가는 날이다. 이날 숙소인 고락셉(5.100m)까지는 크게 경사가 없으나 이 곳을 지나면서 경가가 급해진다. 마지막 고소 경계지역이다. 이 날은 아마도 새벽 일찍 떠나서 칼라파타르에 도착하면 에베레스트 지역의 장관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진책에서 보면 저녁 노을이 더 멋지던데, 숙소인 고락셉에서 좀 올라가면 황혼이 물든 에베레스트를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도상거리 10.2킬로
이후 일정은 올라간 길을 그대로 되돌아 내려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로브제(4.887m)나 고락셉(5.100m)에서 잠들기가 좀 힘들지 모른다. 그런데 경험으로 보면 초장에 고소를 겪는 것이 오히려 낮지 않나 싶다. 결국 남체(3,440)와 딩보체(4,352m)에서 하루 쉬는 동안 얼마나 고소에 잘 적응하는가 하는 것이 제일 핵심이다.
날씨 예보를 보니 밤에는 거의 영하 20도 밑으로 내려가는 등 생각보다 추운 듯 하다. 이번 주말에는 시내 나가서 최종 준비를 하려고 한다. 롯지에는 난방이 없고 침낭 하나로 버텨야 하기 때문에 취침용 내의가 필요할 것이고, 그 외 망가진 선글라서도 새로 하나 사야 한다. 참, 스팻츠끈이 달랑달랑하는데 이번 기회에 하나 구입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