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은 시옷이다

계승혁

2012년 1월

백두대간이란 말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건 십년이 훨씬 넘은 듯 하다. 처음에는 국토에 대하여 새롭게 이해하여 보자는 취지였을 터인데 당시 등산 붐과 맞아 떨어지면서 백두대간 종주로 발전된 것이 아닌가 싶다. 처음에는 전문 산악인들만 하는 것으로 알았으나 점차 그 열기가 확산되어 동네 산악회까지 백두대간 종주를 하게 되더니, 이젠 더 나아가서 정맥이니 지맥이나 하는 알쏭달쏭한 단어들까지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서울 근교 산들을 가보면 소위 정맥이나 지맥에 해당하는 산줄기들에는 어김없이 온갖 리본이 나풀거리는 시대가 되었다.

그 동안 중단했단 등산을 다시 시작한 지도 거진 십년이 다 되온다. 처음 등산하기 시작하는 대부분 사람들에게 그러하듯이 나에게도 등산은 點이었다. 특정 봉우리를 오르는 게 목표였다는 말이다. 그런데, 점점 시간이 흐르면서 등산은 線으로 바뀌게 되었다. 즉, 어느 특정 지점이 목표가 아니라 출발해서 도착하기까지 전 과정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특히 능선 자체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거리 또한 늘어나게 마련이다. 서울 근교에 하루 종일 아스팔트 만나지 않고 걸을 수 있는 능선이 과연 있겠나 싶지만 지도를 잘 보면 이런 곳이 꽤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처음에는 별 생각없이 이런 능선을 찾아서 다녔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런 능선들이 많은 경우 무슨 정맥이니 무슨 지맥이니 하는 산줄기들과 겹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자 자연스레 현재 내가 지나고 있는 능선이 백두산에서 출발하여 어떤 경로를 거쳐 여기까지 연결되는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의문이 생기게 되었다. 그 핵심은 백두대간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다.

이 글에서는 백두대간이 도대체 무엇인가 생각해보려 한다. 현재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출발하여 금강산, 태백산, 속리산을 거쳐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일자형 산줄기인데, 찬찬이 생각해 본 결과 백두대간은 일자형이 아니고 시옷 자 형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 글의 골자이다. 이를 살펴 보려면 먼저 대간이 무엇인지 따져 보아야 할 것인데, 당연히 정맥이나 지맥은 무엇인지 같이 따져 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지리학이나 지형학을 전공하는 사람도 아니고 전문 산악인도 아니다. 역사학자나 서지학자도 아니다. 따라서 이 글은 전문적인 시각에서 쓴 것이 아니라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을 끄적인 것에 불과하고 따라서 참고문헌 같은 것도 없음을 미리 밝힌다.

- 대간은 서로 다른 바다로 흘러가는 물줄기의 경계이다
- 정맥은 서로 다른 강으로 흘러가는 물줄기의 경계이다
- 백두대간은 시옷이다
- 마치면서


대간은 서로 다른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물줄기의 경계이다

인터넷에서 쉽게 검색할 수 있는 우리나라 산줄기 지도를 찾아 보면 山經圖 하고 新山經圖 두 가지가 있는데, 크게 보면 별로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 산줄기들을 백두대간과 정맥들로 구분하고 있다.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지리산에 이르는 산줄기인데 여기에서 대간이란 것이 보통명사인지 고유명사인지 의문이 생긴다. 대간 자체가 고유명사라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는데, 이 글에서는 대간은 보통명사이고 백두대간은 고유명사라는 입장에서 그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렇다면 대간과 정맥은 어떻게 구별되는가. 우선 무엇이 다른가 생각하기 앞서 그 공통점이 무엇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더욱 범위를 넓혀서 능선의 공통점이 무엇인가 물어보아도 마찬가지인데, 그 핵심은 분수령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즉, 비가 오면 능선을 경계로 하여 서로 다른 곳으로 빗물이 흘러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서로 다른 어떤 곳으로 흘러가는지 살펴보아야 하는데, 바로 여기에서 대간과 정맥, 그리고 기타 산줄기들이 구분된다. 즉, 산줄기라고 해서 다 같은 산줄기가 아니고 산줄기 사이에 위계질서가 있다는 말이다. 산줄기 사이의 족보라고나 할까.

대간은 서로 다른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물줄기의 경계이고, 그 하위 개념인 정맥은 서로 다른 으로 흘러들어가는 물줄기들의 경계가 되는 것이다. 백두대간은 다들 잘 알다시피 백두산에서 지리산에 이르는 산줄기인데, 대개 국민학교 다닐 때 지도 보면서 달달 외운 마천령산맥, 낭림산맥, 태백산맥, 소백산맥들의 일부를 지나게 되고, 크게 보아서 우리나라 황해바다와 동해바다의 분수령 역할을 한다. 그러고 보면 대간은 서로 다른 바다로 흘러가는 물줄기의 분수령이라는 정의에 크게 어긋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대륙이나 섬을 막론하고 바다 위에 떠 있는 땅에는 반드시 서로 다른 바다로 흘러드는 물줄기의 경계가 있게 마련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접근하다 보면 서로 다른 바다라는 게 무슨 의미냐 하는 문제에 다다르게 된다. 어떤 땅 주위에 서로 다른 바다가 둘이라면, 이 서로 다른 두 바다로 흘러드는 물줄기를 구분하는 데에 선 하나면 충분하다. 일본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일본에는 크게 두 바다가 있는데 자기들 표현으로 東海와 日本海이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물론 太平洋과 東海이다. 남아메리카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섬이나 대륙의 공통점은 양쪽으로 삐죽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북아메리카, 또는 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북극해가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단순히 일자형 선으로는 태평양, 대서양, 북극해, 세 바다를 구분할 수 없다. 세 바다를 구분하려면 필연적으로 분기점이 있어야 하고 그 분기점을 시작으로 세 선이 시작되어야 한다. 이런 섬이나 대륙의 특징은 그 모습이 삼각형에 가깝다는 것이다. 어떤 대륙이나 섬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가 넷이라고 하면 분기점이 하나 또는 둘이어야 한다. 물이 전혀 빠져 나갈 곳이 없는 오목한 지형이 있으면 이야기가 좀 복잡해 지는데, 이런 경우는 일단 무시하기로 하자.

자, 그러면 우리나라는 어느 쪽인가. 우선 한가지 생각해야 할 점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반도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다행히도 북쪽으로 흘러가는 물줄기는 없으므로 일단 무시하기로 하자. 현재 백두대간은 일자형인데, 일자형 산줄기가 구분할 수 있는 바다는 두 개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바다가 셋이다. 황해, 남해, 동해, 이렇게 말이다. 그렇다면 백두대간은 일자형이 아니고 중간에 분기점이 하나 있는 시옷자 모양이 되어야 한다.

다시 한번 정리해 보자. 일단 백두대간이란 낱말에서 대간이란 낱말을 보통명사로 따로 떼어 낼 수 있다면 반드시 그 뜻이 있어야 한다. 이 경우 서로 다른 바다로 흘러드는 빗물의 경계라는 정의가 상당히 타당해 보인다. 만일 이 정의를 받아들인다면 백두대간은 시옷자 모양이어야 한다. 아니면 우리나라 바다에서 남해를 둘로 갈라서 황해와 동해에 통폐합하는 수 밖에 없어 보인다. 이를 피하려면 백두대간은 시옷자 모양이어야 한다.

현재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백두대간을 유지하려면, 대간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여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이렇게 저렇게 연결되는 실제 산줄기를 지칭하여 그냥 백두대간이라고 하면 된다. 실제로 집에 있는 국어 사전을 보면 대간이라는 낱말은 없다. 그런데, 정맥은 상당히 여러 개가 있기 때문에 이야기가 달라진다. 따라서 정맥의 경우 보통명사로 취급하여 그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같은 사전에는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의미에 부합되는 정맥이라는 단어도 없다. 좀 오래 전에 나온 사전이라서 그런지 모르겠다.


정맥은 서로 다른 강으로 흘러들어가는 물줄기의 경계이다

그렇다면 정맥이란 무엇인가. 국어사전에조차 없는 낱말이므로 기존 정맥의 공통점을 추려서 그 의미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정맥을 보면 대개 큰 강들의 유역 경계임을 수 있다. 그런데, 큰강이란 어떤 기준인가. 여기에서 큰강이란 압록강, 청천강, 대동강, 예성강, 임진강, 한강, 금강, 섬진강, 대동강, 두만강이다. 한 가지 첨언하자면 두만강의 남쪽 경계에 대해서는 정맥이라는 표현 대신 정간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그냥 정맥으로 간주한다. 이런 강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약간의 예외를 인정한다면 그 발원지가 백두대간이라는 점이다. 청천강과 예성강은 예외이다. 열 개 가운데 두 개가 예외라면 공통적인 성질이라고 하긴 좀 무리일 수도 있겠지만 그나마 가장 공통적인 성질이 아닌가 싶다. 결국 정맥이란 대간과 바다를 연결하는 물줄기를 에워싸는 산줄기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백두대간에서 발원하는 물줄기가 무수히 많을 것 아닌가. 그런데, 백두대간에서 발원하는 강이 여덟 개 밖에 없다니. 물론 백두대간에서 발원하는 물줄기는 무수히 많고, 바다로 나가는 물줄기도 무수히 많다. 그렇지만, 바다로 나가는 물줄기들 가운데, 그 출구에서 시작하여 거슬러 올라갔을 때 백두대간에 다다를 수 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다다를 수 있는 경우라 하더라도 두 물줄기가 합쳐지는 지점에서 적절하게 선택을 해야만 백두대간에 다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예성강 하구에서 출발하여 물줄기를 아무리 잘 선택하여 거슬러 올라가더라도 백두대간에 다다를 수 없다. 황해 바다로 나가는 물줄기 가운데 현재 통용되는 백두대간에 다다르는 물줄기는 압록강, 대동강, 임진강, 한강, 금강이 전부이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이렇게 된다. 백두대간에 떨어진 빗방울이 황해바다로 흘러가려면, 이 다섯 개 강 하구 중 하나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동해 바다로 나가는 물줄기 가운데 백두대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물줄기는 상당히 많지만, 그 길이가 매우 짧으므로 여기에서는 논하지 않는다.

실제 백두산에서 출발하여 남으로 내려가면서 물줄기들이 어떻게 바뀌는지 살펴보자. 백두산을 출발하면 오른쪽은 압록강이다. 왼쪽은 처음에는 두만강이지만 얼마 지나면 바로 동해 바다와 바싹 붙어서 가기 때문에 강이라고 내세울만 한 게 별로 없다. 쭈욱 내려가다 마대산이란 곳에 이르면 오른쪽으로 산줄기가 갈라지는데 압록강과 대동강의 경계이다. 이 산줄기는 서쪽으로 조금 가다가 갈라져서 압록강, 청천강, 대동강의 경계가 된다. 계속 내려오다가 원산 서쪽 두류산에서 다시 한번 서쪽으로 갈라지는데, 대동강과 임진장의 경계이다. 이 산줄기는 서쪽으로 가다가 다시 갈라져서 대동강, 예성강, 임진강의 경계를 이루게 된다. 더 내려오면 추가령 근방에서 서쪽으로 한번 갈라지는데 임진강과 한강의 경계이고, 계속 내려오다가 매봉산 근처에서 오랜만에 동쪽으로 갈라지는 정맥이 나오는데 여기서부터 백두대간은 한강과 낙동강의 경계가 된다. 계속 내려오다가 속리산을 지나면 금강과 낙동강의 경계가 되고, 육십령 지나서 영취산 부근부터는 섬진강과 낙동강의 경계가 된다. 여기서부터 문제인데 섬진강과 낙동강은 모두 남해바다로 흘러가는 강이고 보니 백두대간은 더 이상 바다를 구분하는 분수령이라는 의미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실제 답사할 수 있는 이남만 살펴보자면 정맥의 정의에 부합되는 큰강에 해당하는 강은 한강, 금강, 섬진강, 낙동강, 이렇게 넷이다. 요란스러운 4대강에서는 섬진강이 빠지고 영산강이 들어가는데 온갖 삽질에 채이고, 발리고, 가로막힌, 소위 정부 선정 4대강에 비하여 유유히 흘러가는 섬진강은 팔자가 늘어진 셈이라고나 할까. 섬진강 유역에 사는 분들 가운데는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 정말 팔자 늘어진 것인지는 백년 이백년 쯤 지나면 알게 되지 않을까.

이쯤 되면 지맥의 의미는 분명해진다. 지맥은 정맥에서 발원하여 강으로 흘러가는 천의 경계를 이루는 산줄기이다. 한강과 임진강의 경계를 이루는 한북정맥의 경우 남쪽으로 내려오는 지맥들이 바로 서울 강북 사람들이 매일 보게 되는 도봉지맥, 수락지맥 등이다. 서울 옛 도심은 바로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 인왕산, 남산으로 이어지는 도봉지맥, 그리고 수락산, 불암산, 아차산으로 이어지는 수락지맥 사이에 있는 것이고 이 두 지맥 사이를 흐르는 천이 바로 중랑천이다. 서울 강남의 경우 탄천, 경안천 등이 바로 위에서 말하는 천에 속한다.

그런데, 新山經圖를 보면 기맥이란 것이 있는데, 이는 정맥은 안되지만 지맥으로 분류하기에는 좀 큰 산줄기들이다. 예를 들자면 남한강과 북한강의 경계, 낙동강과 남강의 경계 등에 기맥이란 이름을 붙혀 놓았다.


백두대간은 시옷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황해, 남해, 동해 등 세 바다를 가르는 백두대간은 어디 어디를 지나는가 살펴보자. 이미 살펴보았거니와 섬진강과 낙동강이 같은 바다로 흘러감을 상기하자. 또한, 금강과 섬진강은 서로 다른 바다로 흘러감을 상기하자. 그런데, 금강과 섬진강 사이에는 강이나 천들이 매우 많은데,만경강, 동진강, 영산강은 모두 금강과 같이 황해 바다로 흘러가고 탐진강은 남해바다로 흘러간다. 이상을 염두에 두고 시옷 형태의 백두대간이 어떻게 되는지 살펴보자.

일단 백두대간에서 낙동강과 동해 바다 사이의 경계가 되는 낙동정맥이 갈라지기 전까지는 어차피 기존의 백두대간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낙동정맥은 남해로 흘러가는 낙동강과 동해로 흘러가는 각종 하천의 경계이므로 백두대간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 글의 골자이다. 그러니까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의 분기점이야말로 시옷 모양으로 생긴 백두대간 자체의 분기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거 참 이야기를 하다보니 태백산맥을 부활하자는 이야기처럼 들릴 지 모르겠지만 옛 태백산맥이 서로 다른 바다의 분수령이 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동해와 남해를 통폐합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제, 백두대간을 따라내려 오면서 황해 바다와 남해 바다의 분수령이 어디인지 보면 시옷대간을 확정할 수 있다. 일단, 덕유산 육십령을 지나 영취산에 이르면 기존의 백두대간을 버리고 금강과 섬진강의 경계를 이루는 호남정맥을 따라 내려와야 한다. 호남정맥을 따라오다 보면 마이산을 지나고 좀 더 가서 금강 만경강의 경계가 갈라져 나간다. 여기서부터는 황해바다로 빠지는 만경강과 남해 바다로 빠지는 섬진강의 경계를 따라가게 된다. 기존의 호남 정맥을 계속 따라가면 내장산, 무등산을 거치게 되고, 동쪽으로는 계속 섬진강 유역이지만 서쪽으로는 동진강, 영산강 유역을 차례로 거치게 된다. 이렇게 가던 시옷백두대간은 드디어 섬진강을 버리고 영산강(황해)와 탐진강(남해)의 경계를 달리게 되는데 이 산줄기를 新山經圖에서는 땅끝기맥이라 이름지어 놓았다. 이 산줄기를 계속 따라가면 월출산, 두륜산, 도솔봉 등을 거쳐 황해바다와 남해바다의 딱 중간이라 할 수 있는 땅끝마을에 이르게 된다. 삼십 여년 전에 가본 땅끝마을은 그야말로 구멍가게 하나 없는 궁벽진 갯마을이었고, 남해바다 쪽 비탈진 해안을 따라서 꼬불꼬불한 황톳길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얼마 전에 들러본 땅끝마을은 고성능 스피커에서 노랫 가락이 흘러나오는 관광지가 되어 있었다.

내 생각에는 시옷 자 모양으로 생긴 산줄기 전체를 백두대간이라 이름 붙혀도 좋지 않겠나 싶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간이니 정맥이니 하면 반드시 일자형 산줄기를 연상하게 된다. 굳이 이런 분들을 염두에 둔다면 다음과 같이 이름붙혀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되면 좌백두대간은 400킬로가 조금 넘고, 우백두대간은 850 킬로쯤 된다. 물론 지도 위에서 적당하게 꺽은 선으로 연결한 거리이므로 실제 거리는 이보다 상당히 길 것이다.

이와 같이 백두대간을 새로 정하고 나면 이제는 정맥도 새로 생기게 된다. 예를 들어 예전에 강으로 대접받지 못하던 만경강, 동진강, 영산강 등이 하루 아침에 강 대접을 받게 된다. 남해 바다로 흘러드는 탐진강이나 동해 바다로 흘러드는 태화강이나 형산강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강 유역의 넓이나 강의 길이 등을 고려하여 적절한 기준을 세워야 할 것이다. 너무 많은 강들이 큰 강 대접을 받게 되는데, 이 부분이야말로 시옷 백두대간을 주장하는 데에 최대 약점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영취산 이남의 예전 백두대간은 대간 대접을 받지 못하고 정맥 이름을 얻게 된다. 뭐 낙서정맥이나 섬동정맥 아니면 지리정맥 정도 되지 않을까. 낙동강하고 섬진강이 싸우지 않도록 낙서섬동정맥이나 아니면 섬동낙서정맥도 좋을 것이다. 아니면 현재 낙남정맥을 영취산까지 이어서 그냥 낙남정맥이러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마치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으로 여러 부문에서 극성이다. 이 엄청난 극성 에너지가 조선 시대 500년 동안 어떻게 꽉꽉 눌려 왔는지 역사적으로 살펴보고 싶지만 이는 내 능력 바깥이다. 백성들을 '다스리고' 싶어 하는 정치가라면 500년 동안이나 백성들의 에너지를 꽉꽉 눌러 놓은 그 정치 기술의 핵심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찰해 볼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물론 백성을 다스리는 데에 관심 없는 정치가들에게는 아무 짝에 쓸모없는 기술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극성에 백두대간도 물론 빠지지 않는다. 삼십년 전에 태백산맥이나 소백산맥을 종주한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길도 없는 능선을 지형도 하나 의지하여 가시덤불 헤치면서 지나갔다고 한다. 요사이 백두대간이나 정맥, 지맥 등을 가보면 온갖 리본에 널찍한 등산로가 나 있어서 오히려 산길 찾아가는 묘미가 없어져 버렸다. 좀 헷갈린다 싶으면 리본을 따라가면 되니까 말이다. 자기가 지나간 나뭇가지에 리본 거는 사람하고 자기가 지나간 전봇대에 오줌 싸는 강아지하고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다.

난 아직 백두대간을 종주해 보지 못하였고 가까운 기간 내에 억지로 종주할 생각도 없다. 물론 자연스레 찾아오는 기회를 일부러 피할 생각도 없다. 서울 근교에 널려 있는 능선들을 걸어 본 경험에 비추어 보면 각종 산줄기 종주의 핵심은 참을성이 아닐까 싶다. 육체적인 참을성보다는 정신적인 참을성이 필요할 것이다. 정말이지 잠깐이면 지날 수 있는 능선을 아찔하게 깍아서 만든 아스팔트 길을 건너려고 한참 오르내리다 보면 욕부터 나오는 걸 어쩌랴. 능선 산행을 가로 막는 장애물은 물론 이 뿐이 아니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온갖 종류의 유형 무형 장애물들이 산행을 가로막는다. 이러한 장애물들을 만드는 데에는 대개 권력과 자본, 그리고 기술이 필요하게 마련이다. 끈 묶이지 않은 채로 짖어대는 강아지도 심각한 장애물인데, 물론 이런 장애물을 설치하는 데에 큰 권력이나 자본 또는 기술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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