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사랑 주최 「제 2회 수학교육 심포지엄 "수능 시험 분석 및 개선방안" (2004년 6월 5일, 숭실대)」주제발표 원고

수능시험 제도와 학력저하

주제발표: 계승혁 (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 교수)
원고제출: 2004년 5월 5일


초록: 최근 우리나라 학생들의 학력이 전반적으로 저하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학생들의 학습 동기 가운데 상급학교 진학이 큰 부분임을 감안하면 이는 대학 입학시험제도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여기에서는 구체적으로 그 이유를 살펴보고, 그 개선책을 논의해 본다.


- 들어가면서

- 객관식 문제만으로 학생들을 선발한다?

- 5학년 수학과 6학년 수학 중에서 선택하라?

- 끝마치면서


- 들어가면서

지난 90년대 말부터 학생들의 학력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말들이 들리기 시작하였다. 그 동안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고, 그 대책의 일환으로 학력이 부족한 학생들을 위한 별도의 과목이나 입학전 강좌 등이 개설되기도 하였다.

인터넷 시대의 시작으로 인하여 지식의 유통 과정이 예전과 전혀 다른 새로워진 환경에서 학생들의 평균적인 학력을 예전 방식으로 측정하고 대책을 논하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지식의 창출은 예나 지금이나 우수한 인재들이 주도하는 것이며, 이들의 새로운 지식 창출은 그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동력이 된다.

간간히 신문 지상에 보도되는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학생들의 평균 학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는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이다. 모든 학생들을 꼭같은 잣대로 평가하는 대학입시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자신의 적성이나 능력과는 무관하게 공부를 해야 하고, 그 결과 세계 최고 수준의 "평균"학력을 얻게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 중 많은 분들이 이러한 피상적인 보도에 접하고, 막연하게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은 세계 최고 수준인 것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장차 우리나라를 끌고 나가야 할 상위 학생들의 학력은 암담하기마저 하다. 이십년 쯤 전에 우리나라 학생들이 유학을 가면 언어 장벽이 적은 수학에서만큼은 현지 학생들에게 밀릴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외국에서 교수생활을 하고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요새는 수학마저도 현지 학생들에게 밀린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소위 일류대학 신입생들의 학력저하는 심각하다. 물론 이들의 학력이 어느 정도 저하되었는지 말해주는 객관적인 지표는 없다.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을 직접 가르치는 교사와 교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필자가 근무하는 서울대학 뿐 아니라 과학고 출신들이 주로 진학하는 과학기술원에 있는 교수들의 말을 들어 보아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단지 수학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고 국어 영어 등 전 과목에 걸친 현상이다.

이 글에서는 상대적으로 우수한 학생들의 학력 저하가 왜 일어나는지 살펴보고 그 대책을 생각해 보기로 한다. 학생들의 학습동기 중 가장 큰 부분이 대학 진학임을 감안하면 문제는 당연히 대학입시와 결부된다. 요사이 각 대학의 입시는 대학마다 과목 등에서 큰 차이가 있지만 본고사를 치를 수 없는 상황에서 그 핵심은 수능시험이다. 따라서 문제를 수능에 국한하여 살펴 보기로 한다.


- 객관식 문제만으로 학생들을 선발한다?

객관식만으로 시험을 치르는 것 자체는 의미가 있다. 만일 각 대학의 본고사가 있는 상황에서 대학 진학에 요구되는 최소한의 기본 학력을 측정하는 것이라면 객관식으로 시험을 치러도 된다. 그런데 이 시험이 우리나라의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최종 대학입학을 결정한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물론 수능 성적은 입시의 한 요소일 뿐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수능 성적이야말로 대학입시의 거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이 현실임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실제 사설학원에서 만드는 배치표라는 것을 보면 수능에서 한 문제를 더 맞고 더 틀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극명하기 드러난다.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에 맞고 재미있는 과목을 깊게 파고들어 공부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학생들은 비슷비슷한 참고서를 과목마다 대여섯개씩 사서 지겨운 반복학습에 시달리게 된다. 예전의 본고사에서는 좀 더 어려운 수준의 참고서를 공부하면 아무래도 득이 되기 쉽고 적어도 손해를 보지는 않는다. 그러나, 객관식으로 치르는 수능 시험에서 좀 어렵고 체계적인 사고를 요구하는 교재로 공부하면 오히려 손해를 본다.

수학의 경우, 수능 문제를 보면 나름대로 객관식 및 단답형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그러나, 출제위원들이 제 아무리 노력해도 단답형은 단답형일 뿐이다. 수년 전에 로그와 관련된 부등식 문제가 출제되었다. 주어진 부등식이 옳은지 틀리는지 답해야 하는 문제였는데, 그 답을 추측하는 것은 그런대로 감을 잡을 수 있지만 제대로 증명하기가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예전 본고사 문제로도 손색이 없는 문제였다. 그런데, 이 문제에서 자신의 추측이 옳은지 제대로 증명하여 확인해 보려는 학생은 시간에서 엄청난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다. 아마도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이런 문제의 경우 찍으라고 가르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감을 가지고 찍는 학생과 그저 연필 굴리는 학생에게 그 결과를 다를 것이다.

수학은 물론이거니와 모든 공부는 그 과정이 중요하다. 전혀 다른 결론이라도 그 과정이 몇 가지 사실에 근거하여 논리적인 과정을 거쳤다면 무조건 틀렸다고 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객관식이나 단답형 문제에서는 결론만이 항상 중요하다. 더더구나 그 결론도 일체의 반론을 허용하지 않는 획일화된 결론이다.

보다 깊게 생각하는 학생들에게 막심한 손해를 끼치는 현재 수능의 영향은 단지 학력의 저하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의 사고 방식에도 큰 악영향을 끼친다. 모든 일에서 그 과정을 보지 않고 결과만을 보는 결과지상주의가 판을 치게 된다. 이러한 사회는 아무 생각없이 구호를 외쳐대는 정치적인 선동에 휩쓸리기 쉽다. 성장과정에서 한번 입력된 사고 방식은 고치기가 힘들고, 그 폐해는 적어도 몇 세대에 이르게 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수능 시험이 단순한 자격고사라면 지금보다 문제를 쉽게 낼 수도 있고, 객관식으로 보는 것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처럼 본고사를 허용하지 않는다면 이를 대치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고, 이는 당연히 주관식 시험을 치르는 것으로 귀착된다. 아마도 수능을 관리하는 기관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대한민국 전체 학생을 상대로 하는 주관식 시험을 어떻게 치르느냐고 기겁을 할 것이다. 그러나, 대입 관련 국가 시험을 주관식으로 치르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는 미국의 경우를 보자. 일반적으로 미국에서는 본고사가 없으므로 본고사 방식의 주관식 서술형 수학 시험 같은 것은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이는 큰 잘못이다. 미국의 국가시험은 잘 알려진 SAT 말고도 AP 가 있는데, 이를 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먼저 SAT 는 세 가지로 구별되는데 SAT I 은 전적으로 중학교 수준이다. 그 다음 단계인 SAT II Math Level Ic 는 본질적으로 중학교 수준이지만 지수와 로그(7차 「수학 I」), 복소수의 연산(7차 「10-가」), 수열과 급수(7차 「수학 I」) 등과 같이 고등학교 수학도 나오며 문제는 아주 쉽다. 마지막 단계인 SAT II Math Level IIc 는 본질적으로 우리 나라 고등학교 1학년과 문과학생들이 배우는 내용인데, 유리함수의 극한, 벡터 등 「수학 II」(7차) 의 내용이 약간 언급된다. 문제 수준은 꽤 쉬운 편으로서 단순 계산이나 간단한 적용을 묻는다.

이제 AP 를 살펴 보자. 원래 AP 는 대학과정을 미리 학습하는 것으로서 미국이 우수 학생들의 수준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시작된 과정이다. 이러한 AP 의 수학과목은 Calculus ABCalculus BC 라는 두 과정으로 분리되는데, Calculus BC 를 하려면 Calcyluis AB 를 먼저 해야 하고, 시험에서도 Calculus BC 를 응시하면 Calculus AB 의 성적도 같이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과정을 이수하는 학생들이 극히 우수한 몇몇 학생들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그 수가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매년 21만명 정도가 AP Calculus를 응시하는 데, 미국 인구가 2억8천만인 것을 고려하면 우리나라에서라면 4만명 정도가 응시하는 셈이다. 이 정도의 규모라면 문과 이과를 망라한다 해도 상위 십여개 이상의 대학정원이다. 특기할 점은 이 시험의 50%가 서술형 주관식으로 치러지며 500명 이상이 채점에 동원된다는 점이다. 이는 앞으로 우리 대학의 입시 제도 방향 설정에 시사하는 점이 많다. 결국 웬만한 상위 대학에 가는 학생이라면 서술형 주관식 수학 시험을 치른다는 뜻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Calculus AB 는 본질적으로 「수학 II」(7차) 와 「미분과 적분」(7차)에 나오는 내용인데 대학에서 배우는 미분방정식 가운데 가장 간단한 형태가 추가된다. 지난 2003년 응시생수는 166,821명이었다. 그리고, Calculus BC 는 기본적으로 Calculus AB 의 내용을 포함하면서 더 많은 내용이 추가되는데, 추가되는 내용은 거의 대부분이 현행 이공계 교양수학에서 첫학기에 공부하는 내용이다. 지난 2003년 응시생수는 45,973명이었다. 우리나라로 환산하면 몇몇 우수 이공계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 거의 대부분은 이미 대학 일학년 일학기 수학을 고등학교에서 마쳤다는 이야기가 된다.

앞에서 잠시 언급하였지만 AP 시험의 50%는 객관식으로 치르고 나머지 50%는 서술형 주관식이다. 객관식에서는 45문제를 105분 동안 풀게 되어 있으며 주관식에서는 여섯 문제를 90분 동안에 풀게 되어 있는데, 주관식 한 문제에 서너개의 작은 문제가 단계별로 연결되어 있다. 문제의 양식은 예전 우리 나라의 본고사와 비슷하지만 그 수준은 예전의 서울대 본고사보다 쉽다. 어떤 특별한 아이디어를 요구하는 문제는 아니며, 원칙을 충실히 알고 있으면 풀 수 있는 문제들이고, 채첨에서도 마지막 결론보다는 원칙에 충실한 사고과정을 거쳤는지 중시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20만명이 제출하는 주관식 서술형 답안지를 채점하기 위하여 약 500여명의 수학 교사와 수학교수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데, 수학교수나 수학교사들은 채점위원으로 응모할 수도 있다고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공교육이 부실하다고 평가되는 미국도 엄청난 인력과 예산을 투입하여 수십만 학생을 상대로 하는 서술형 수학 시험을 치른다는 것이다. 과연 왜 이런 투자를 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교육부는 대학입시를 각 대학에서 자율적으로 한다고 하지만 본고사는 치를 수 없도록 법으로 금지해 놓았다. 본고사를 치를 수 없도록 하는 것도 상식에 어긋나지만, 각 대학에서 치르는 본고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려면 이를 대치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할 텐데, 국가는 아무런 대책도 없는 실정이다. 어려운 공부를 하지 않으면 당장은 편하지만 그 대가는 현재 고등학생들이 왕성하게 활동하게 될 이삼십년 후 혹독하게 치르게 될 것이다.


- 5학년 수학과 6학년 수학 중에서 선택하라?

올해부터 제 7차 교육과정으로 공부한 학생들이 입시를 치르는데, 7차 과정에서는 선택과목이라는 것이 많아진다. 수학의 경우 자세히 들여다 보면 실제로는 예전에 비하여 내용이 줄어들었지만 몇 가지 과목을 나열함으로써 마치 새로운 내용이 포함되고 그 내용이 매우 다양해진 것처럼 일반 국민들을 호도하고 있다. 물론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다. 그러나 한 두 문제를 맞고 틀리는 데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수험생의 입장에서 보면 선택 자체가 심각한 문제인데, 평가원의 2005년 수능 선택과목은 수험생을 더욱 혼란스럽게 하고 결과적으로 학력 저하에 크게 일조하고 있다. 선택과목은 그 과목에 따라서 학생들이 일반적으로 느끼는 난이도가 다를 수 밖에 없고, 이러한 차이는 당연히 학생들의 평가에 반영되어야 한다.

특히, 모든 것이 수치화된 자료를 바탕으로 당락이 결정되는 대학입시에서 이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다. 이를 위하여 평가원에서는 표준점수니 변환표준점수니 하는 어려운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그 핵심은 같은 과목을 시험친 학생들 가운데 어느 정도의 석차를 얻었는가 하는 점이 핵심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독일어와 불어를 선택하여 시험을 치렀는데, 독일어 시험이 불어보다 어렵게 출제됐을 경우 독일어를 선택한 학생들이 당할 수 있는 불이익을 상쇄시켜 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중학교 신입생들의 수학실력을 평가하는데 초등학교 5학년 수학과 6학년 수학 가운데 선택하여 시험을 치르게 하고, 이들의 성적을 소위 변환표준점수로 고쳐서 서로 같은 차원에서 비교하여, 이를 근거로 누구의 수학실력이 누구보나 낫다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모두를 어이없어 할 것이며, 설마 이런 일이 있겠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런데, 2005년 수능에서 이러한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자연계 학생들이 선택하여야 할 수리영역 "가"형의 시험범위를 보자. 이들은 「수학 I」과 「수학 II」를 필수로 하고 「미분과 적분」, 「확률과 통계」, 「이산수학」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다면 이 세 과목은 그 내용이 다를지언정 비슷한 정도의 지적 능력과 학습 부담이 요구되어야 할 것이다.

과연 그런가 알아보기 위하여 7차교육과정에 대하여 1997년 교육부 고시에 나와 있는 내용을 살펴보자. 먼저 「미분과 적분」은 「수학 I」과 「수학 II」에서 습득한 내용을 토대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확률과 통계」 및 「이산수학」은 고등학교 1학년 과정인 10단계의 수학에 도달 여부에 관계없이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과목이라고 되어 있다. 그나마 「확률과 통계」는 10단계 이하 수준의 수학 내용을 바탕으로 한다고 되어 있으나, 「이산수학」의 경우 이러한 선수학습내용조차 언급되어 있지 않다. 다시 말하여, 「미분과 적분」은 그 과목을 학습하기 위하여 상당한 내용을 먼저 공부해야 하지만 다른 과목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 경우, 이 세 과목을 같은 비중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 평가인지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각 과목의 내용을 살펴보면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미분과 적분」은 필수로 부과되어 있는 「수학 I」및 「수학 II」의 내용과 중복되는 부분이 없다. 그렇다면 「확률과 통계」는 어떤지 살펴 보자. 자연계 학생들에게 필수로 부과되는 「수학 I」에는 "확률과 통계"라는 영역이 설정되어 있는데,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별도의 과목인 「확률과 통계」와 비교해 보면 거의 대부분이 중복된다. 즉, 「확률과 통계」를 선택하는 학생은 필수과목인 「수학 I」에서 이미 공부한 내용과 대동소이한 내용을 공부하면 되지만, 「미분과 적분」을 선택하는 학생은 전혀 새로운 내용을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중학교 입학생에게 5학년 수학과 6학년 수학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여 시험보라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는 셈이다. 그리고, 이 두 학생의 성적이 그대로 비교되고 입시에 반영되는 것이다.

필자의 단순한 희망인지는 모르겠으나, 이공계를 공부하려는 학생들이 대부분 「미분과 적분」을 공부하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수능에서 점수를 따는 것은 별개 문제이다. 자기 자신의 학력에만 달려 있는 것이 아니고 같은 과목을 선택하는 학생들의 수준이 얼마나 될지 상대적으로 살펴 보아야 하는 것이다. 전체 수험생이 전체 수험생을 상대로 눈치작전을 펴야 하는 것이다.

수능에서 어느 과목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어느 과목을 대충 넘어가느냐 아니면 심각하게 공부하느냐 결정될 것이다. 상당히 많은 경우 미적분학은 뒤로 밀릴 수 밖에 없으리라 여겨지는데, 어렵고 쉽고를 떠나서 새로 공부해야 할 분량이 상당한 차이가 나는데 누가 어려운 쪽을 택하겠는가. 통계학을 전공하는 교수들조차 어떻게 「미분과 적분」과 「확률과 통계」를 같은 비중으로 선택하도록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미국 고등학교에서 상당히 많은 우수 학생들이 대학수학까지 갈고 닦는 이 마당에 우리 학생들은 어느 과목을 선택해야 유리한지 서로 서로 눈치를 보고 있어야 하니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자연계 학생이 「미분과 적분」을 선택한다 해도 예전의 자연계 학생들이 공부하던 전체 분량에는 턱없이 모자란다는 점을 사족으로 덧붙힌다. 실제로 "복소수"와 "일차변환"과 같은 중요한 내용이 7차교육과정에서는 통째로 없어져 버렸다. 현재의 7차 과정처럼 "복소수"와 "행렬"의 경우 정의와 간단한 계산만 다루고 그 쓰임새를 무시한다면 아예 완전히 삭제하는 것이 나을지 모른다. 아무런 쓸모도 없어 보이는 내용을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수학은 별 쓸모가 없다는 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높다.

특히, 수능에서 "나"형을 선택하게 될 인문계 학생들은 미분과 적분에 대하여 전혀 공부하지 않고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다. 미분과 적분이 주요 도구로 쓰이는 경영학이나 사회과학, 특히 경제학을 공부할 학생들은 과목을 선택할 때 매우 신중해야 할 것이다. 수리영역 "가"형을 요구하는 이공계 대학에서조차 이상한 선택과목 제도로 인하여 초월함수의 미적분 등 핵심내용이 빠지기 십상인 점을 지적하였는데, 많은 대학의 이공계는 아예 문과와 마찬가지로 「수학 I」만 하고 입학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학에서 수학교육이 매우 강화되어야 하는데 당장 내년 신입생부터 실현될 수 있는지는 매우 의문이다. 앞으로 수학도 영어의 TEPS 처럼 등급 인증제를 도입하여 이공계 졸업시 일정 등급이상자만 졸업시키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생각해 봄직하다.


- 끝마치면서

지금까지 우수 학생들의 학력이 저하되는 이유로서, 객관식 문제로 그 학생의 모든 학력을 측정하는 현재 제도를 지목하여 살펴 보았다. 또한, 제 7차 교육과정에서 교과내용이 줄어든 것도 모자라서 부담이 큰 과목과 적은 과목을 놓고 선택하도록 하는 올해 수능 시험제도가 학력 저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아보았다.

수학의 경우 유럽과 일본, 중국의 교등학교 교과과정 수준이 높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여기에서는 상대적으로 공교육이 부실하고 학력 수준이 형편없는 것으로 이름나 있는 미국의 경우에도 상당수의 우수 학생이 서술형 주관식 문제로 수학 시험을 치르고 대학에 입학한다는 것을 살펴 보았다. 미국에서 수십만명을 대상으로 하는 시험에서 상당한 인력과 경비가 드는 서술형 시험을 유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고 우리의 경우를 되돌아 보아야 할 것이다.

어느 시험제도를 택하더라도 지금처럼 우수한 학생들이 더욱 깊은 내용을 공부할 때 손해를 본다면 이는 시험으로서 의미가 없다. 조속히, 우수한 학생들이 더욱 깊이있는 공부를 할 때 대학에 들어가기 유리해지는 제도를 찾아야 할 것이다. 모든 학생은 아니더라도 상위 학생들에게는 더욱 깊이있는 내용을 공부하도록 장려하고 이를 측정할 수 있는 제도가 확립되어야 한다. 국가 차원에서 서술형 주관식 수학 시험을 관장할 자신이 없다면 각 대학이 그 필요성을 알아서 판단하도록 이를 허용해야 한다. 현재 제도는, 국가 스스로 하지도 못하면서 대학이 하려는 것까지 방해하는 것이다.

제 7차교육과정에서 과목을 세분하고 선수과목이 없어도 참여할 수 있는 과목을 제시한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학업 부담이 큰 과목과 적은 과목을 나란히 제시하여 그 중에서 반드시 한 과목을 선택하도록 하는 제도는 그 자체로서 이미 비교육적일 뿐 아니라 학생들의 학력 저하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과연 어느 방향이 교육적이고, 학생들의 학력 증진에 도움이 되는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교육과 입시만큼이나 전체 국민들의 관심을 끄는 분야도 없을 것이다. 또한, 입시만큼 크게 돈 들이지 않고 인기에 영합할 수 있도록 제도를 고칠 수 있는 분야도 없을 것이다. 흔히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한다. 그러나, 정치하는 사람들은 당장 몇년 뒤에 닥칠 선거에 관심이 있지 백년 후를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 손에 교육이 놀아나는 것은 국가적으로 큰 불행이다. 어려운 공부를 할 필요 없다고 선전하면 당장은 인기를 끌 수 있을지 모르나 후일 역사의 심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모든 책임을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일반 국민들도 당장 편하게 사는 데에만 골몰하는 것이 아닌가 스스로 자성해야 할 것이다. 이 중에서도 교육을 직접 담당하는 당사자들을 비롯하여 정책 입안 등 교육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의 책임이 가장 큰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백년 후 사가들이 요즘 교육담당자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 물어볼 때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스스로 자성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