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수와 무리수

2026. 4. 3.

유리수(有理數)라는 용어를 유비수(有比數)라고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본에서도 일부 작가들이 이런 말을 자주 퍼뜨린다.

이런 주장은 성경에 나오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구절을 "태초에 비율이 있었다"고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별 세는 밤"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이미자의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셀 수 없이 수많은 밤"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기원전 유클리드의 글이나 19세기 펠릭스 클라인의 강의록을 보아도 "로고스"라는 단어는 "비"를 뜻하기도 하지만 거기에는 "합리적임"이라는 의미가 강하게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왜 피타고라스 학파가 "수"를 강조하였는가? 그것은 수가 바로 "합리성"이기 때문이다. 한자로 "數"는 센다는 의미를 가지기도 하지만 "學"과 함께 쓰일 때에는 사물의 이치를 뜻한다. 고대인들에게 "수"라는 것은 오늘날의 단순한 자연수를 뜻한다기보다 "기준 단위"의 몇 배, 즉 기준 단위를 여러번 더함을 뜻하였다 [Elements, VII]. 집 한 채 두 채, 나무 한 그루 두 그루 하듯이.

초기 피타고라스 학파의 "모든 것이 수"라는 생각은 공측가능(commensurable)이라는 성질과 깊은 관련이 있다. "유리수"라는 말은 "공측가능성" 또는 "공측성"(公測性)을 뜻한다.

동질의 두 양(量)이 공측가능하다는 말은 각각을 계속 더하면 언젠가는 그 양이 같아진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두 개의 "길이" A, B가 있다고 하자. 이들이 공측가능하다는 말은 A + A + ... + A = B + B + ... + B 라는 뜻이다. 이로부터 두 "길이" A, B의 비가 자연스럽게 자연수로 표현된다.

"길이가 얼마냐?"라는 질문은 의미가 없다. 기준이 없으면 "길이"를 수량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길이의 비"는 합리적이고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런 공측성은 "길이"뿐 아니라, "넓이"나 "부피", "질량", "시간" 등 모든 동질의 양에 적용되는 성질이라고 생각하였다. 고대인들은 해의 주기와 달 또는 행성들의 주기에도 공배수가 있다고 생각하였고, 이 공통 주기를 찾으려 노력하였다.

공측성은 오늘날 용어로는 "공배수가 있다"는 말과 그 뜻이 같고, 이 말은 다시 "공약수가 있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이 공약수가 바로 측정의 단위라 할 수 있다. 유클리드의 글에는 이런 개념들이 잘 서술되어 있지만, 오늘날은 더 이상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다. 가야할 길이 머니 빠른 길을 택하는데, 그로 인해서 잃는 것이 많이 생긴다.

피타고라스는 합리성을 강조하기도 하였지만, 궁극적인 진리는 아레톤(arreton)이라 세상에는 말과 글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있음을 매우 강조하였다. 무리수 발견을 비밀에 부쳐야 한다는 뜻이라기보다 모를 때에는 침묵해야 한다는 뜻에 가깝다.

피타고라스 학파의 큰 업적 중의 하나는 "비공측성"(incommensurability)을 발견하고 이런 비합리적인 (irrational) 관계를 설명하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에우독소스는 A:B를 합리적으로, 즉 유리수로 표현할 수 있는 일반적인 방법은 없지만, A:B가 C:D와 같은지 다른지를 판정할 수 있는 법을 발견하였다. 피타고라스 학파의 가장 큰 업적이라 하여도 손색이 없다.

아르키메데스의 지렛대 원리도 에우독소스가 없었다면 발견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지렛대 원리란 두 물체가 평형을 이루려면 질량의 비가 평형점으로부터의 거리의 비에 반비례하여야 함을 뜻한다.

질량의 비라는 것은 공측성이 없으면 말하기 어렵고 (alogos, irrational) 길이의 비도 공측성이 없으면 말하기 어렵지만, 이 비들이 같은지 다른지는 합리적으로 (rational)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기 때문에 지렛대 원리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이 지렛대 원리는 후일에 뉴턴이 중력을 이해할 때에도 핵심적인 도움이 된다.

에우독소스는 비합리적으로 생각하였던 것에 대한 합리적인 해석을 통하여 피라미드의 부피가 각기둥 부피의 1/3 임을 증명하였는데, 그는 적분론의 시조라 할 수 있다. 에우독소스의 비에 관한 해석은 19세기에 데데킨트가 실수를 정의하는데 그대로 사용되었다.

어릴 때에는 용어 하나 하나 그 뜻을 잘 이해하고 그에 따라 사물을 따로 따로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나이 들면 한 단어는 다른 단어들과 연관을 가지고 매우 복합적인 의미를 가지고 탄생하였다는 것을 새롭게 이해하여야 더 성장한다.

수학의 용어들은 많은 것들이 철학이나 종교와 관련을 가지는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Equality, identity, transformation, translation, transcendental, transfinite, real, rational, reflection, relation, revolution, order, harmony, matrix, category, connection, geometry, ... 이루다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학 용어들이 깨침과 같은 복합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유클리드가 수많은 원리 중에서도 "같음"을 제일원리로 삼은 것은 정말 탁월하다. 많은 사람들이 유클리드의 저서를 공리적이라고 말하지만 수많은 원리에 관한 통찰이 없이는 공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말을 빠뜨린다.

수학은 매우 정교한 용어를 제공하지만, 그 이면에는 온갖 영감들이 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