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ao is Silent

2009.4.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자연과학”지 제26호 - 과학자가 읽은 책

마술사이고, 피아니스트이고, 수학자이고, 그리고 그냥 보통 사람인 레이몬드 스멀리안(1919~ )은 시카고 대학에 다닐 때에는 루돌프 카르납에게서 배웠고, 프린스톤 대학에서 알론조 처지의 지도로 1959년에 박사 학위를 땄다. 그는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를 쉽게 이해하는 방법에 관한 논문을 썼으며 “이 책의 제목은 무엇인가요?”라는 제목의 책을 비롯하여 재미있는 대중 저서들을 많이 내 놓았다.

그가 기억하는 여섯 살 때 만우절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그날 그의 형은 “너 오늘 단단히 각오해. 내가 크게 속일거니까.”라고 말 하였다. 그날 그는 형에게 속지 않으려고 하루 종일 긴장하면서 지냈고, 형은 그에게 아무런 속임수도 걸지 않았다. 그는 그날 속은 것인지 안 속은 것인지 밤 늦도록 생각해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스멀리안의 “The Tao is Silent”(1977)는 재미있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이 책은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고, 하고 싶어 하는 것도 아니며, 그냥 하기 때문에 한다.”는 생각을 풍기는 책이다.

많은 사람들이 서양적인 사고는 훈련에 의한 점진적 터득을 강조하고, 동양적인 사고는 바람 불고 물 흐르는대로 따르기만 하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을 강조한다고 생각한다. 이 두 가지 방법 중 어느 하나가 더 바람직하다고 말하는 것은 쉽지 않다. 기계적이고 단계적인 훈련이 불현듯 영감을 떠오르게 하는가 하면, 자연의 순리를 따르려고 하나 그 때가 이승에서 오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스멀리안은 객관적인 연구 방법을 옹호하고 주관적인 방법에 반대하는 논문들을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써 온 사람이다. 그리고 그렇게 객관성에 강하게 몰두한 결과 그는 주관적인 접근 방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성숙한 경지에 오르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수학이나 논리는 매우 정확한 이야기를 하는 학문이고, 단계적인 사고만 다루며, 더 나아가 그러한 틀을 통하여 궁극에 도달할 수 있는 과목으로 착각하고 있다. 마치 거울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매우 힘든 것처럼 수학과 논리의 가장 깊은 곳에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있다. 그리고 이러한 학문의 궁극적인 목표는 그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만나게 되는데 있다고 말 할 수도 있다. 우리가 수학을 통하여 정확한 것을 아는 훈련을 하는 까닭은 그 너머에 있는 것을 알기 위함이다. 최고의 수학자들은 수학을 이끄는 힘이 이성이 아니라 감성이라는 것을 모두 잘 알고 있다. 논리와 수학은 감성의 학문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일반인들이 수학과 훨씬 더 친해질 수 있다. 음표가 음표로 보이면 음악이 들리지 않듯이, 수식이 수식으로 보이면 수학을 느끼지 못한다. 푸앵카레(1854-1912)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가 뭔가를 증명할 때에는 논리를 가지고 한다. 그러나 뭔가를 발견할 때에는 직관을 가지고 한다.

“The Tao is Silent”는 사랑을 전파하기 위한 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라는 梵我一如(범아일여)를 말하고, 기독교도가 되었다가 불교도가 되었다가 도덕론자를 대변하기도 하며, 공자와 신비적인 사상을 논한다.

스멀리안은 자신이 공리주의자라고 말하는 신을 소개하면서, 모든 인격적 존재가 궁극적인 완성을 이루게 되는 과정을 돕는다고 말한다. 심지어 신은 우주의 과정 그 자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는 성자와 악인의 유일한 차이는 성자가 악인보다 나이가 더 많다는 것이라고 한다.

또 이 책에서는 자유의지와 결정론에 관한 재미있는 대화를 보여주며, 다음과 같이 끝을 맺는다. “어떤 사람에게 신비주의자의 길을 따라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익지 않는 사과에게 이제는 나무에서 떨어져야 할 시간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리석다. 사과가 다 익었을 때는 떨어져야 한다고 말할 필요가 없다. 때가 되면 사과는 저절로 떨어진다.”

우리가 큰 산에 오르는 까닭은 거기에서는 많은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