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 권의 책 (서울대 저널 100호, 2009)

죽음 이후의 삶

2009. 10. 31. 김홍종 (수리과학부 교수)

대부분의 사람은 좋은 스승을 찾아 방황하는 일로 일생을 보낸다. 그 스승은 한 권의 책일 수도 있고, 꽃과 나비, 별이나 바람 같은 자연일 수도 있으며, 온갖 사람들이 섞여 있는 사회일 수도 있다. 때에 따라 친구가 스승이 되기도 하고, 자신을 한없이 괴롭히던 원수가 스승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더 커지기 위해서는 좋은 스승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더 커지지 못한 이유를, 더 많이 배우지 못한 탓, 좋은 스승을 만나지 못한 탓으로 돌리면서, 정작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데는 소홀하다.

자신이 그렇게 밖에 살지 못하는 까닭이 남들처럼 좋은 부모를 만나지 못하였거나, 제대로 배울 기회를 놓쳤다거나, 출세하기에는 아는 사람이 너무 없다거나, 사회가 잘못 되어 있다거나, 가진 돈이 많지 않다거나, 얼굴이 못생겼다거나, 신체가 허약하다거나, 등등 많은 여건들이 나쁘게 되어 있어 더 좋은 기회가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서 불만 속에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도 언젠가는 큰일을 할 거야. 그 때가 되면 모두 나를 우러러 볼 거야.”라고 생각하는 낙천적인(?) 사람도 있다. 또 어떤 사람은 “나는 정말 뛰어난 사람이야. 저런 가치 없는 사람들과는 다르지. 사회는 당연히 나를 대접하여야 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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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는데 걸리는 시간이 사람처럼 긴 동물은 없다.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지만,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자신이 갈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이들이 많다. 공자는 십오 세에 ‘배움’에 뜻을 두었다 한다. 오늘날 노르웨이 같은 나라에서는 그 나이면 성인으로 대접 받아 부모 곁을 떠나 독립생활을 한다. 우리나라의 대학생이 ‘저는 아직 나이가 어린데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미숙한 사회인지 알 수 있다. ‘대학’이란 ‘큰 학문’을 뜻하건만, 조그만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부끄럽지 않게 여기고, 수업 성적을 구걸하는 것을 비굴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매년 3월 신입생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한 글자’ 덕담을 하기 시작한 것이 어느덧 여러 해가 되었다. 첫 해에는, 이제 부모님과 선생님을 떠나 혼자서 서 보라는 뜻으로 立(설 립)자를 소개하였고, 다음 해에는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뜻으로 大(큰 대)자를 소개하였다. 이 글자는 신입생들이 대학에 합격하여서 대단한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앞으로 살아가면서 어려운 시련을 겪게 될 것이고, 그 때에 자신이 무력한 사람이 아니라 위대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용기를 주기 위하여 사용한 것이다. 또 어떤 해에는 두 자를 사용하기도 하였는데 그것은 ^^ 이다. 나는 이 기호 하나를 ‘오름기호’라고 부르는데, 오름기호 하나는 현재보다 더 발전하라는 뜻이고, 오름기호 한 쌍은 나이가 더 들더라도 ‘끝없이 발전하라’는 뜻으로 사용하였다. 금년에는 신입생들에게 세 글자를 써서 IMG를 소개하였는데, 이것은 IMF가 발전한 것이다. IMF(I am fine~)으로는 부족하고, IMG(I am Great!)라야 한다는 뜻인데, 어려울 때에 ‘IMG'라고 세 번 자신에게 말하라는 것이다. 물론 내가 학생들에게 줄 때에는 URG(You are Great!)라고 주지만 그것을 받으면 IMG가 된다. 대부분의 신입생들은 잘 알아듣지 못한다. 세월이 지나고 나서야 그 말을 떠올리는 학생들이 가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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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산다는 것은 잘 죽는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사람들은 ‘몸과 마음’이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따르면 사람을 ‘시공 속의 유한한 구간’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신비주의자들의 오랜 전통에 의하면, “사람은 ‘몸과 마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더 큰 세상을 보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순간은 ‘살아서 죽음을 받아들일 때’라고 말한다. 이러한 사상은 고대 이집트, 고대 그리스의 신비주의, 힌두교, 불교, 도교, 이슬람 수피즘, 유대 카발라, 기독교 신비주의 등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사상은 19세기 미국에서도 ‘New Thought Movement’로 크게 유행하였으며, 오늘날에도 꾸준히 명상가들이 강조하고 있는 사상이다.

디팩 쵸프라(1946~)는 인도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의사이자 사상가이고 “Life After Death, 2006 (죽음 이후의 삶, 정경란 옮김, 행복우물, 2007)"을 비롯한 수많은 책의 저자이다. 쵸프라의 ”죽음 이후의 삶“은 크게 감명 깊게 읽은 책도 아니고, 꼭 읽기를 권하는 책도 아니지만, 내 책꽂이에 들어 있다가 뽑힌 책이다. 사람마다 몸에 맞는 음식이 있고, 환자마다 맞는 약이 다르듯이, 책도 스승도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쵸프라는 “더 높은 의식의 단계로 옮겨 가는데 방해가 되는 것은 ‘습관’이다”라고 말한다. 습관... 나는 이런 사람이니까, 이런 경우는 이렇게 행동하고,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느끼며 사는 것. 신은 없다고 생각하거나 또는 신은 나를 사랑하고 특정한 언어를 사용할 것이라고 믿는 것. 또 나의 능력은 이것뿐이라고 생각하는 것 등. 그는 이러한 습관, 즉, 편견이 우리의 발전을 막는다고 말한다. 많은 편견 중에서 가장 버리기 힘든 것은 ‘나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음 그림은 “몸과 마음”이 지나가면서 만든 업보를 나타낸 것으로 마치 바다 위를 떠돌아다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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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몸은 쉬지 않고 변하는 것으로 대부분 먹는 음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실 몸의 대부분은 진공이다...) 내가 먹는 음식의 상당부분은 내가 (또는 내 몸이) 된다. 이 몸은 항상 새로운 공기를 받아들이고 또 낡은 공기를 내 보내며, 주위의 다른 생명체들과 몸을 섞고 있다. 우리는 이 몸을 이리 저리 부리기도 하고 재우기도 하고, 씻기기도 하면서 잘 사용하고 있다. 또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도 온갖 환상들로 이루어져 있다.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떠들어야 하고, 음악을 들어야 하고, 신문이나 TV를 보아야 하며, 주위에서 자극을 받지 않고 적막함 속에 놓이게 되면 온갖 망상과 잡념들로 넘치게 된다. 쵸프라는 그런 잡념들을 “그냥 바라보라”고 한다. 그러면 “몸과 마음”이 가리고 있던 실체가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고 한다. 사람은 감성을 개발하면 점점 감성적으로 되고, 이성을 개발하면 점점 이성적으로 되는데, 사실 감성의 가장 깊은 곳과 이성의 가장 깊은 곳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는 것은 매우 재미있는 현상으로 그것은 “유한과 무한”을 생각하게 한다. 사람의 삶을 유한한 크기의 기다란 방으로 비유하고, 탄생을 그 방의 입구로 들어오는 것으로, 또 죽음을 그 방의 출구로 나가는 것에 비유한다면, 사상가들은 “그 방의 출구가 그 방의 입구와 다른가?” 라고 질문한다. 이승에 남아 있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면 다시 이승으로 돌아오게 되고, 이승에 더 이상 미련이 없으면 출구를 빠져 나와 새로운 삶을 얻게 된다고 한다.

쵸프라의 책 이외에도 죽음 이후의 삶에 관한 책들로는 무척 오래 된 “이집트 死者의 서”와 “티베트 死者의 서”가 있고, 그 외에도 많은 책들이 있다. 어릴 때부터 노인들과 같이 생활하지 않은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사람들의 몸의 수명이 늘어나고,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이런 책들은 그 가치를 더 발휘하게 된다. 하지만 죽을 때가 되어서 죽음을 생각한다면 좀 늦었다는 생각이 든다. 삶이 죽음을 결정하듯 죽음 또한 삶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훌륭한 배우들은 무대에 오르면 자신이 맡은 역할을 멋있게 보여줄 뿐 아니라, 그 역할을 다하면 전혀 다른 새로운 역할을 할 수도 있으며, 그 또한 자신이라는 것을 안다.

이 생에서 다하지 못한 것은 다른 생에서 다시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보다는, 오직 하나뿐인 유한한 삶을 최선을 다하여 산다는 생각이 더 좋을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