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수학회 주최 「제 19회 수학교육 심포지엄(2002년 7월 13일, 수원 성균관대)」주제발표 원고

자연계 학생의 수학 기초학력 저하에 따른 문제점과 대처 방안

주제발표: 계승혁 (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 교수)
원고제출: 2002년 5월 9일, 일부 수정: 5월 22일


초록: 최근 우리나라 학생들의 기초학력이 저하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여기서는 우선 기초 학력이 무엇을 뜻하는가 살펴보고, 특히 수학의 경우 그 실상을 알아보기 위하여 수학교사와 교수들의 경험담을 들어보고 서울대 이공계 신입생들의 수학 실력을 살펴보기로 한다. 실력 저하가 일어나는 이유로 사회환경의 변화 등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으나, 가장 핵심은 역시 입시 제도의 변화인데 여기서는 입시 제도의 변화가 학력저하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정책 당국자들의 책임이 없는지 살펴보려 한다. 학생들, 특히 장래 우리나라를 이끌고 가야할 최상위 그룹 학생들의 학력 저하를 막기 위해서는 고등학교 교육, 대학 입시, 대학 교육 등을 서로 연계하여 생각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의 교육을 직접 담당하는 수학교사, 수학 교수들이 담당해야 할 몫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기로 한다.


1. 기초학력이 무엇인가

2. 자연계 학생들의 수학 기초학력이 어느 정도인가

3. 실력저하가 왜 일어나는가

4. 어떻게 해야 하는가

5. 끝마치면서


이 글은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주최 「제 7회 대학교육정책포럼(2001년 5월 4일, 서강대)」에서 주제발표한 내용을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1. 기초학력이 무엇인가

최근 우리 나라 학생들의 기초학력이 저하되고 있다는 보도가 계속되면서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데, 이를 논의하기 위하여 우선 기초학력이 무얼 뜻하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먼저 생각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생활하는 데에 불편함이 없을 정도의 지적인 능력이다. 이를 위하여 국가는 의무교육을 설정하고 있으며, 초등학교, 중학교 및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내용도 결국 학생들의 지적 능력을 높이기 위한 것임은 당연하다. 그런데 지적 능력을 높이기 위한 기초는 읽기, 쓰기, 듣기, 말하기를 포함하는 논리적인 언어 구사 능력이다.

사회 구성원의 논리적인 언어 구사 능력은 모든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다. 모든 사회 구성원이 논리적으로 정직하게 사고하고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다면 그 사회는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다. 그러나, 그 구성원들의 언어 구사 능력이 떨어지는 집단이나 조직은 스스로의 의사를 결정할 수 없고 한 두 사람의 명령에 의존하게 된다. 특정 계층의 아집과 독선에 의하여 사회가 지배되는 경우, 그 지배층은 사회구성원의 기초학력 증진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사회 구성원들의 읽기, 쓰기, 듣기, 말하기 수준은 그 사회의 성숙도를 나타낸다. 모든 사회 구성원이 다른 사람의 말을 비판적으로 판단하고 자신의 의견을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면 그 사회는 이미 성숙된 사회이다. 이러한 능력이 부족한 구성원이 많을수록 그 사회는 특정 계층의 선동에 휩쓸리고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기 쉽다.

정직한 사고능력과 각자의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능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가르치고 배우면서 갈고 닦아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훈련과정의 핵심이 초·중·고등학교의 국어 교육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더욱이, 장차 여러 분야에서 우리 사회를 이끌고 나아갈 인재들이라면 더욱 엄격한 훈련이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훈련이 덜 된 사람들이 정치를 하고, 기업을 하고, 언론을 장악하여 여론을 조성한다면 그 폐해는 여러 세대에 걸치게 될 것이다.

논리적인 언어구사를 하려면 논리적인 사고방식이 몸에 배어 있어야 하는데, 이러한 훈련과정이 바로 수학 교육이다. 역사상 최초로 민주사회를 이루었던 고대 그리이스에서 수학과 기하학이 체계적으로 발전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현란한 언어는 사람을 속이기도 하지만 수학은 결코 사람을 속이지 못한다. 미국의 일류 대학에서는 문과 계통의 학생들에게도 수학을 필수로 부과한다. 수학은 문화이다.

수학은 또한 기술력이다. 한 국가 혹은 민족의 장래가 기술력에 달려 있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고대시대부터 새로운 기술을 확보한 종족은 그 세력을 넓혀서 다른 종족을 흡수하였다. 근대 이후 이러한 기술력의 바탕이 수학임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현대 사회에서 한 국가의 경쟁력은 그 나라의 수학 수준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한 국가의 기술력은 이를 주도하는 계층의 수학실력에 의하여 판가름난다. 미국의 보통 고등학생들은 우리나라의 보통 고등학생보다 수학실력이 떨어지지만, 일류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의 수학실력은 우리나라 학생들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들은 이미 대학 신입생 혹은 2학년 수준의 수학을 고등학교에서 공부한다. 공립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은 근처의 대학에서 학점을 이수하기도 한다. 미국의 기술력이 그냥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는 유럽을 비롯하여, 최근 정보산업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인도도 마찬가지이다.

수학은 지식기반 사회의 핵심이다. 물자와 노동력이 산업발전을 주도하던 시대는 끝났다. 지식기반 사회에서 수학은 다른 응용과학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산업현장에 투입된다. 지난 50년대 인공위성 발사에서 소련에 뒤진 미국은 그 이유가 수학교육의 부실에 있다고 판단하여 수학에 엄청난 연구비를 투자하였는데, 최근 정보산업과 금융산업에서 그 결실을 보고 있다. 새로운 기술은 아이디어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아이디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수학실력이 필요하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기술력을 주도할 학생들의 수학실력이 저하되고 있다면 그 심각한 결과가 몇 세대에 걸쳐서 나타날 것이다. 우리가 백년 전에 나라를 잃은 것도 결국 세계조류를 알지 못하고 기술력에서 뒤진 때문이다. 현재, 미국을 비롯한 여러 선진국에서는 학생들의 수학실력을 높이기 위하여 대통령까지 나서서 한 마디씩 거들고 있다.

논리적인 언어구사 만으로 성숙된 사회가 이룩되는 것은 아니다. 논리적인 언어를 구사하려면 기본적인 지식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역사를 공부해야 하고 각 나라의 사정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수학만으로 기술력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수학을 적용하려면 자연현상에 대한 예비지식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결국 학생들이 공부해야 하는 분량은 자꾸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핵심은 역시 국어와 수학이다. 다른 부분은 경우에 따라서 학생 스스로 책을 보고 공부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그러나, 국어와 수학은 혼자 공부하기가 매우 어려울 뿐 아니라 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 최근 점차 그 중요성이 강조되는 외국어도 마찬가지이다.


2. 우리 학생들의 기초학력이 어느 정도인가 - 수학의 경우

가. 수학교사와 교수들의 경험담

최근 대학에 들어오는 신입생들의 기초학력이 저하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물론, 그 핵심은 국어, 수학, 영어 실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최근 보도에 의하면 엇비슷한 수준의 학생들이 입학하는 것으로 이해되는 대학의 국어수업조차도 우열반을 나누어야 할 정도라고 한다. 신입생 일반 물리학을 담당하는 교수의 말을 들으면 최근 신입생들의 수준이 물리 실력도 매우 떨어졌는데, 그 근본 이유는 미적분학의 부실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어느 과목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수학의 경우도 신입생들의 학력이 연도별로 어느 정도 하락하고 있는지 나타내는 정확한 자료는 없다.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것이다. 기초학력이란 것이 수치로 나타낼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이들의 교육을 현장에서 담당하는 교수들의 경험이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다.

대한수학회에서 재작년에 다섯 번에 걸쳐서 개최한 좌담회에서 수학교사와 교수들이 한 이야기들을 들어 보자. [좌담회 내용은 대한수학회 소식지 (http://www.kms.or.kr/home/journal/old/nkms/) 2000년 기사(특집: 수학교육) 참조]

골치 아픈 삼각함수를 모르는 것이 무슨 큰 문제인가 반문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삼각함수는 전기공학의 기본 언어로서 요사이 각광받는 첨단 통신산업은 그 자체가 삼각함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각함수나 미적분의 기본적인 내용도 모르는 상태에서 공대를 졸업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국가적인 낭비이다.

재작년에 교육방송에서 지방대학 학생들이 수도권 대학에 대거 편입학하는 상황에 대한 심층보도가 있었다. 이들은 주로 노량진에 있는 편입학 전문학원에 다니면서 영어를 열심히 공부하여 편입학 시험을 통과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이 막상 수도권에 있는 공과대학 등에 입학한 후, 거의 모든 수업 시간에 칠판이 수식으로 가득 차는 것을 보고 한 달도 못되어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단순히 학생 수를 채우는 데 급급하지 않고 학생들을 제대로 교육시킬 의지가 있는 몇몇 대학들은 이공계 대학에서 편입생을 모집할 때에 수학 시험을 필수로 부과한다.

나. 서울대 자연대 일학년 학생들의 설문조사

발제자 역시 직접 미적분학을 강의하면서 학생들의 실력저하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재작년 발제자가 소속된 서울대학 수학과가 운영하는 미적분학 홈페이지에는 다양한 의견이 접수되었다. 대체적인 조류는 배우는 내용이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심한 경우에는 "이런 식으로 일방적으로 진도를 나가면 어떻게 하느냐"고 교수를 비난하는 경우도 있었다. 7년 전에 미적분학을 수강했다가 군대 다녀와서 재수강한다는 한 학생은 그 때보다 상당히 쉬워진 것이라며 학생들을 나무라는 글을 올리기도 하였다. 학생들의 느낌을 강의에 반영하기 위하여 2000년과 2001년 일학기 중간고사 직전에 자연대 미적분학 수강생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다음과 같이 응답하였다.

▷ 수학에 대한 본인의 사전지식에 비추어 강의수준이 어느 정도입니까?


2000년


2001년


감당하기 어렵다

102

30.8%

71

21.9%

좀 어렵지만 따라갈 만하다

188

56.8%

198

61.1%

그저 그렇다

33

10.0%

42

13.0%

쉽다

7

2.1%

9

2.8%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어서 흥미가 없다

1

0.3%

4

1.2%

합계

331


324



** 2000년은 전체 수강생 대상이고, 2001년에는 "기초반 수강생(
다음 절 참고)"이 누락된 것임.

▷ 현재 사용하는 교재의 수준이 어느 정도라고 느껴집니까?


2000년


2001년


강의를 들어도 이해하기 어렵다

79

24.2%

78

24.3%

강의를 들으면 알겠는데 혼자 공부하기 어렵다

161

49.4%

163

50.8%

혼자 공부할만한 내용이다

86

26.4%

77

24.0%

너무 쉬워서 재미없다

0

0.0%

3

0.9%

합계

326


321



▷ 고등학교 교과내용과 현재 배우는 내용을 비교하면?


2000년


2001년


전혀 연결이 안되어 당황스럽다

92

28.1%

78

25.5%

고등학교 때 궁금했던 것들이 많이 해결되었다

66

20.2%

87

28.4%

고등학교 때 궁금했던 내용은 여전히 궁금하다

60

18.3%

54

17.6%

고등학교 수학을 공부하면서 궁금했던 점이 없다

40

12.2%

29

9.5%

고등학교 수학과 비교하여 생각해 본 적이 없다

69

21.1%

58

19.0%

합계

327


306



수학실력의 저하는 어느 특정 대학의 문제가 아니고 전국적인 현상이다. 그런데,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앞으로 우리나라의 기술력을 이끌고 나아갈 소위 일류 대학 이공계 신입생들의 수학 실력 저하이다. 앞서 언급하였지만 이 학생들은 미국의 일류 대학 출신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데, 대학 입학 때부터 이미 뒤쳐져 있는 상태이다.

약간 주제에서 빗나가는 감이 있으나, 뒤에서 고교교육에 대하여 논의할 예정이므로 같은 설문에서 조사된 자료를 같이 검토해 보자. 설문에서는 처음 배우는 내용을 학교에서 배운 것과 학교 밖에서 배운 것의 비율을 물어 보았다(괄호 안은 2000년 자료).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교에서 처음 배운 비율이 줄어들었으며, 특히 어디에서 배운 경우가 좋았냐고 물었을 때 학교 밖에서 배운 경우가 좋았다고 응답한 학생이 더 많았음은 우리 고등학교 교육에 문제점이 있음을 말해 주는 자료라 하겠다. 학생들이 어느 정도 솔직하게 대답하였는지는 미지수이다.

초등학교 때 공부하면서 수학에서 새로운 개념(예, 나누기, 분수의 더하기 등등)을 처음 접한 경우, 학교에서 배운 것과 학교 밖에서 배운 것의 비율은? [합이 100%가 되도록]

중학교 때 공부하면서 수학에서 새로운 개념(예, 제곱근, 이차함수 등등)을 처음 접한 경우, 학교에서 배운 것과 학교 밖에서 배운 것의 비율은? [합이 100%가 되도록]

고등학교 때 공부하면서 수학에서 새로운 개념(예, 로그함수, 극한 미적분 등등)을 처음 접한 경우, 학교에서 배운 것과 학교 밖에서 배운 것의 비율은? [합이 100%가 되도록]

▷ 새로운 내용을 학교에서 처음 접했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의 차이점은?

위 설문에서 주목할 사항은, 양쪽 경험이 없다는 학생이 10%미만이라는 점이다. 즉, 독학이나 학원, 과외 등에서 선행 학습을 전혀 거치지 않고 전 과정을 학교 진도에 맞추어 공부한 학생은 10% 미만이다.

다. 서울대 이공계 미적분학 분반시험 결과

서울대학에서는 2001년 이공계 신입생부터 미적분학을 분반하여 강의하고 있다. 예전의 본고사 세대에서는 어느 정도의 기초적인 수학 실력이 보장되어 있었지만 본고사가 폐지된 이후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공부했는지 의심되는 학생들이 속출했기 때문이다. 2001년에는 기초반을 수강해야 하는 학생들을 가려내기 위하여 입학 직전인 2월말 시험을 치르고 이 성적을 토대로 기초반을 편성하였다. 2002년 신입생부터는 우수반, 보통반, 기초반 등 세 반으로 편성하였기 때문에 분반시험에서 좀 수준 높은 문제를 포함시켰으나 기초반 편성대상자를 염두에 둔 기초적인 문제는 그대로 포함시켰다.

그런데, 결과를 보면 상당히 실망스럽다. [미적분학 분반에 관한 상세한 사항과 관련 시험 문제 및 풀이, 분석결과는 서울대학교 수학과에서 운영하는 미적분학 홈페이지 "수학성취도측정시험에 따른 미적분학 분반에 관한 유의사항" (http://www.math.snu.ac.kr/taoffice/calculus/basic/notice_basic.html) 참조.] 2001년의 경우 단답형은 만점자의 비율이 각 문항 당 70 % 수준이다. 서술형에서는 평균값정리를 이용하는 문제가 학생들에게 가장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간단한 삼각함수의 최소값을 묻는 문제에서는 삼각함수의 미분조차 정확하게 쓰지 못한 학생도 꽤 있었다. 2002년에는 우수반 편성도 염두에 두고 수준 높은 문제를 포함시켰으므로 전체 평균이 낮아진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매우 기초적인 문제의 정답율을 보면 일년간 실력이 저하된 것이 아닌가 우려할 정도이다. 예를 들어서, 합성함수 미분법을 이용하는 간단한 계산문제에서도 정답율이 80%를 조금 넘는 정도이고, 평균값정리를 정확하게 기술한 학생은 30%에 불과하다.

전체적으로 보아, 처음 출제진의 예상에 점수가 미치지 못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기초반 편성 대상자의 기준 점수를 하향 조정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시험 성적과 수능의 수학과목 성적 사이의 상관관계를 보면 재미있는 현상이 발견된다. 즉, 분반 시험 성적이 좋은 학생은 수능 성적도 졸다. 그러나, 수능 성적이 좋다고 분반 시험 성적이 좋은 것은 아니다. 실제로 2001년에는 수능에서 수학과목 만점을 받고도 기초반에 편성된 학생들이 24명이다. 올해에는 수능시험이 좀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수능에서 만점을 받고 기초반에 편성된 학생이 8명이고, 한 문제 틀리고 기초반에 편성된 학생이 16명이다.


3. 실력저하가 왜 일어나는가

가. 사회 환경의 변화와 기초학력 저하

오늘날의 학생들은 디지털 세대이다.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 등 일방적인 매체에 익숙해져 있던 기성세대와 달리 요즈음 학생들은 "상대방이 즉각 응답하는" 시각적인 매체에 익숙해 있다.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교과서는 이미 이 학생들에게 맞지 않는 교육 방식일지 모른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시험 성적으로 표시되는 고전적인 의미의 실력저하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특히, "모든" 학생들에게 예전과 같은 수준의 추리 능력과 계산 능력을 포함한 수학 실력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지 모른다.

그러나, 앞으로 과학기술을 이끌고 나가야 할 수준의 학생들까지 이러한 분위기에 휩쓸리는 것은 문제이다. 공부를 잘 할 필요가 없고 한 가지 재주만 있으면 된다는 사고 방식을 학생들에게 심어주는 사회 분위기가 있다면 이는 심각한 문제이다. 사회 전체가 즉각적이고 시각적인 매체에 익숙해진다 하더라도 그러한 매체를 만들어 내고 그 내용을 제공할 사람들은 보다 깊이 있는 사고를 할 수 있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 금융위험관리 소프트웨어를 아무리 잘 사용할 줄 알아도 이 소프트웨어의 기본 원리를 창안하고 그 약점과 강점을 소상히 파악하는 사람과 경쟁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문학이나 예술을 강조하고 즉흥적인 감성을 추구하더라도 좋은 기능을 가진 기계나 소프트웨어를 제안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을 실제로 만드는 과정은 수학을 비롯한 깊이 있는 지적 능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현재 사회 분위기는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중시하고 이를 위하여 틀에 박힌 공부는 필요 없다는 쪽으로 흐르고 있는 듯하다. 이런 이들이 사업 아이디어를 낼 수는 있겠지만 실제 이러한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것은 결국 기초과목을 포함한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의 몫이다.

나. 대학 입시의 변화와 기초학력 저하

최근 몇 년 사이에 일어나고 있는 대학 신입생들의 기초실력 저하는 단기적으로 대학 입학시험 제도의 변화에 기인하는 바 크다. 학생들이 스스로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공부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주위의 자극에 의하여 공부한다. 어릴 때에는 부모나 교사의 일방적인 강요에 의하여 공부하기도 하지만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공부하는 큰 이유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함이다.

어떤 이들은 대학 진학만을 위한 고등학교 공부를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의 장래를 위하여 대학 진학을 계획하고 이를 위하여 전력투구하는 학생들은 우리나라의 미래이다. 이들이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공부할 때에 우리의 장래가 밝아질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기 위하여" 공부할 때에 스스로 문제의식을 가지고 어떤 분야를 깊이 있게 파고드는 것은 현 제도 하에서 대학 진학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역효과를 낸다. 본고사가 있었을 때에는 한 과목, 특히 수학을 월등하게 잘 하면 여타 과목을 좀 못하더라도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요사이 대학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은 "모든" 과목을 비슷비슷하게 잘 해야 한다. 한 과목이라도 낮은 점수를 받으면 이를 잘하는 과목으로 보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한 가지만 잘 하면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에도 배치된다.

도대체 각 과목당 석차 백분율을 평균하여 그 학생의 내신 성적으로 삼는 것은 어떤 교육 이론에 근거한 것인지 도저히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 고등학교 내신성적의 경우 문제를 쉽게 출제하기 때문에 몇 문제를 틀리는 가에 따라서 한 과목의 석차 백뷴율은 상당한 차이가 난다고 한다. 이 경우, 학생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반복 학습하여 실수하는 일이 없도록 훈련하는 일이다. 이는 학생들을 시험 보는 기계로 만드는 일이다. 30여 년 전 중학교 입학시험이 있을 때 소위 일류 중학교에 들어가려면 거의 만점을 받아야 했다. 이러한 시험에 대비하기 위하여 심지어 음악 교과서에 나오는 모든 노래의 가사는 물론 계명과 박자까지 외우는 진풍경이 벌어지곤 하였다. 물론, 박자를 외우는 요령은 학교에서는 가르치지 않고 과외에서 가르쳤다.

최근 학생들이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 더 이상 영어나 수학 같은 과목은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실제로 어느 대학 영어 경시대회에서 동일한 문제로 시험을 치른 결과 고등학교 3학년과 2학년의 평균이 거의 비슷하게 나왔다고 한다. 재작년 "재수생"이라고 스스로를 밝힌 사람이 대한수학회 홈페이지 방명록에 글을 남긴 적이 있었다. 그 내용을 보면 자신이 고등학교 3학년 때에 수학 공부하는 데에 쓴 시간은 다 합쳐야 5분도 되지 않았다고 한다. 더 이상 공부해야 수능 문제를 푸는 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그 이유라고 한다.

현재 수능시험이 너무 쉽다고 야단이고, 어느 해는 너무 어렵다고 야단이다. 수능을 쉽게 출제하는 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실제로 수능이 쉬워진 이후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아예 포기하던 학생들은 좀 줄어들었다고 한다. 특히, 수능시험이 "모든" 고등학교 졸업생을 상대로 한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수능시험이 대학에 진학하여 제대로 공부할 수 있는가 측정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당연히 정규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상위 30-40% 학생들이 그 주요 평가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한 과목의 만점자가 만 명 이상에 이르는 시험이라면, 이는 그 과목의 우수 학생들에게 그 과목은 더 이상 공부하지 말라고 하는 것과 같다. 적당히 공부해서 만 명에 끼면 되기 때문이다. 물론 한 문제라도 틀리면 그 만 명의 대열에 끼일 수 없기 때문에 학생들은 지겨운 반복학습에 시달려야 한다.

모든 고등학교 졸업생들이 대학에 진학할 수는 없는 형편이고 이는 바람직하지도 않다. 이는 대학졸업자와 비졸업자가 사회에서 얼마나 차별 없이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서 교육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대학진학을 포기한 학생들을 위하여 수능을 쉽게 낸다면 이는 한마디로 대학교육의 포기이다. 교육부는 오히려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의 학력을 갖추지 못한 학생이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사회적인 낭비이다. 어느 지방대학교수의 말대로 대부분의 이공계 학생들이 기본적인 삼각함수조차 모르고 대학에 진학하고 공대에서조차 수학과 관련된 과목이 기피된다면, 이 대학은 누구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인가. 그 대학 학생들의 대학 간판을 위하여 존재하는가, 아니면 대학설립자를 위하여 존재하는가.

대학 입학에서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수능에서 요구하는 학력수준이 너무 낮게 설정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생들에게 수학공부를 더 하라는 것은 무리이다. 특히, 앞으로 우리나라의 과학 기술을 이끌고 나아가야 할 학생들에게 보다 수준 높고 깊이 있는 수학을 공부할 동기가 부여되지 않고 있다.

다. 정책 당국자의 인식과 기초학력 저하

현재 우리가 사는 시대를 장악하고 있는 배금주의는 그 속성상 깊이 있는 사고와 과정을 중시하지 않는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추구하지 먼 장래를 내다보는 기초교육 투자에 인색할 수밖에 없다. 소련이 미국보다 인공위성을 먼저 쏘아 올린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미국은 이를 계기로 수학과 물리 등 기초학문의 교육과 연구에 집중적으로 국가적인 투자를 하였고 얼마 후에 이를 만회할 수 있었다.

1960년대에 들어와 미국의 각 주립대학에서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수학교육을 매우 강화하였다. 이를 계기로 대학 신입생들을 위한 교과서의 분량이 대폭 늘어났으며, 교수 수의 대폭 증가로 이어졌다. 실제 교수 수가 30명 안팎이던 웬만한 주립대학의 수학과 교수 수가 100명 가까이 늘어났으며, 이를 계기로 미국은 수학 연구에서 유럽에 비하여 확고한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이 당시의 투자는 수십 년이 지난 이제 각종 정보산업과 금융산업에서 그 결실을 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대통령 연두교서에서 수학에서만큼은 결코 일등을 양보하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있으며, 수학주간을 공포하고 이도 모자라서 4월을 수학의 달로 확대 지정하는 등 전 국민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하여 애쓰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오히려 수학 등 기초교육이 뒷전으로 물러나고 있다. 그 말썽 많은 BK21 사업에서는 처음부터 수학 분야는 아예 빠져 있다가 말이 많으니까 "기타" 분야를 첨가하여 수학을 수용하는 정도이다. 정부는 작년 11월 15일 대통령 주재 교육인적자원장관 종합계획 간담회를 통하여 관련 부처와 함께 범부처적인 「 국가전략분야(IT BT NT ST ET CT) 인력양성 종합계획」을 확정 발표하였는데, 여기에 보면 "수학 및 자연과학 전공자 등 IT 분야로 쉽게 전환될 수 있는 자들을 대상으로 단기 집중교육 프로그램을 운영"이라는 문구 등 몇 군데 수학이라는 단어가 어설프게 등장한다. 그런데 올해 4월 정부의 15개 부처가 협의하여 확정했다는 「 국가전략분야 인력양성 종합계획 세부 추진계획」에는 그나마 수학이라는 단어가 아예 등장하지 않는 형편이다. 공대 출신의 중앙정부 중견 기술관료에게 이 문건에 관한 이야기를 했더니 그도 답답할 따름이라는 반응이다.

또한, 학부제가 도입되면서 몇몇 작은 대학에서는 수학이 이공계에서조차 선택과목이 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의 결과는 일반인들에게 수학은 대학 간판을 달기 위한 쓸데없는 공부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으며, 실제 정책 입안자들이 이러한 선입견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문과에서도 수학을 필수로 부과하는 미국 일류 대학의 예를 보아야 할 것이다. 아직까지 발제자의 귀가 어두워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대학 신입생들에게 국어를 선택으로 한다는 이야기가 없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미국의 일류대학에서는 신입생들이 거의 매일 작문 등 국어교육을 받아야 할 정도로 국어(영어)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수학교사를 양성하는 교육 당국의 정책도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다. 70년대 이후 공업교육을 강화한다는 취지 아래 연간 천명 가까운 공업교사를 양성하였다. 그런데, 이들의 교사 취업이 막막해지자 고작 생각한다는 것이 이들을 방학 기간 2개월 교육하여 수학교사로 발령내는 일이었다. 덕분에 4년간 수학을 공부하고 수학교사를 지망한 학생들은 취직할 곳이 없었다. 이들은 그나마 고등학교에서 이과공부를 한 학생들이었다. 최근 수년 전부터 음악, 미술, 가정 과목 등의 과원교사가 2개월 교육을 받고 수학교사로 나서고 있다. 과원교사가 문제이고 이들이 수학교사를 원한다면 적어도 이들을 대학에 편입시켜 제대로 수학교육을 받을 기회를 주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학생들에게 수학이나 다른 과목이나 모두 그게 그거라는 인식을 심어주게 된다.

우리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간단한 셈이나 할 줄 알면 되지 무엇 때문에 수학을 공부해야 하는지 의문을 표시한다. 아마 상당수의 정책 당국자들도 그리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최근 산업현장에서 바로 쓰이는 여러 가지 수학이 등장하고 있고, 이러한 수학은 그리 어려운 내용도 아니다. 얼마 전에 서울대 자연대 교수들이 삼성전자를 방문하여 산업현장에서 필요한 과학이 어떤 것들인지 살펴본 적이 있는데, 수학에 직접 관련된 것들이 상당수를 차지하였다. 정책 당국자, 특히 교육정책을 담당하는 이들은 이러한 경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자주 바뀌는 교육정책은 "옳지 못한" 교육정책보다도 더욱 교육을 황폐화시킨다. 교육정책의 결과는 상당한 시일을 두고 나타나기 마련이다. 방금 지적한 수학교사 수급의 문제만 하더라도 불과 수년 후를 내다보지 못하고 정책을 세운 탓에 수많은 학생들이 멍들고 있다. 너무 많은 공업교사 양성을 입안한 사람이나, 그렇다고 해서 정식 교육을 받은 예비 수학교사를 희생해 가면서 이들을 수학교사로 발령내는 것을 입안하고 결재한 사람이 책임졌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하였다. 하긴 이들을 수학교사로 발령내었다고 해서 우리나라 학생들의 수학실력이 저하되었다는 "객관적인"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4.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가. 고등학교에서

모든 고등학생들은 자신의 능력과 자질에 알맞은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모든 학생들로 하여금 성숙된 사회구성원이 되도록 교육시키는 곳이라면, 고등학교는 앞으로 학생들이 어느 정도 자신의 진로를 정하고 이를 위한 예비훈련의 장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하여 고등학교의 계열을 좀 더 세분하고 이에 맞는 교과과정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문과"라는 계열 아래에서 문학을 하고 싶은 학생과 경제학을 하고 싶은 학생, 법학을 전공하고 싶은 학생이 모두 꼭 같은 수준의 미적분을 공부할 필요는 없다. 공학을 전공할 학생과 의학을 전공할 학생이 같은 내용의 미적분을 공부하는 것도 문제이다. 기계를 설계하는 사람, 설계도를 보고 기계를 만드는 사람, 그 기계를 사용하여 제품을 만드는 사람, 그 제품을 생활에 사용하는 사람이 모두 같은 수준의 미적분을 공부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자신의 진로를 선택하여 기계를 설계하고 만드는 사람이 되겠다고 나서는 학생들에게는 이에 맞는 강도 높은 훈련이 필요하다. 요사이 "수요자 중심의 교육"이란 말이 성행하고 있는데, 이를 단순히 "학생들이 원하는 교육" 정도로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방식의 교육에 동의한다면 학생들이 싫어하는 과목은 모두 없어져야 할 것이다. 새로운 교육과정에서는 수학이 선택과목이 되었다. 물론 문학을 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심오한 미적분을 공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를 키워내는 것이 교육이다. 학생들이 싫어하는 것이라도 그 학생의 삶에 필요한 것이라면 이를 강제로 가르치는 것이 학교의 의무이다. 어린이에게 필요한 약은 쓴 약이라도 억지로 먹여야 한다.

대학에 진학하려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이 같은 수준의 교과내용을 배워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비슷한 수준의 학력을 요구하는 것은 초등학교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후에 일류 과학자가 될 학생과 가게를 운영할 학생이 왜 같은 교과내용을 배워야 하는가. 하루 빨리 수준에 맞는 학급 편성이 이루어지고 그 수준에 맞는 내용을 가르쳐야 한다.

극히 우수한 학생들이 모이는 과학고등학교를 대학 진학의 도구가 된다는 이유로 황폐화시키고 있다. 과학고등학교 학생들이 대학 진학을 하지 않으면 어디 가서 과학을 계속할 것인가. 혹시 공부 잘 하는 학생들끼리 따로 모여서 공부하는 꼴은 보지 못하겠다는 시기심의 발로는 아닌지. 인재를 인재로서 대우하는 사회 분위기가 절실하다.

재능 있는 학생들에게는 학년을 뛰어 넘어 높은 수준의 공부를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많은 학생들이 선행학습에 시달리고, 학교에서 1학년 수학을 공부하고 학원에서 2학년 수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라면, 학교에서 능력 있는 학생들에게 2학년 과정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사교육을 줄이고 공교육을 강화하는 길이 될 것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가 제대로 시행되기 위한 최소의 전제 조건은 우수한 교사의 확보이다. 적어도 교사가 학교에서 근무하는 대부분의 시간을 교육에 사용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고, 비슷한 경력의 일반인이 기대할 수 있는 보수가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여건 하에서 교사의 재교육과 평가가 엄정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남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가르치는 내용보다 상당히 높은 수준의 내용을 알고 있어야 한다. 앞에서 나온 말대로 고등학교 수학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수학 교사가 있다면 이는 당사자와 사회 전체의 불행이다. 다른 과목 교사로 있다가 수학으로 바꾸려는 교사에게는 이에 맞는 재교육을 받을 시간과 여건이 주어져야 한다.

나. 대학입시에서

모든 학생들을 학력 혹은 시험 점수라는 한 가지 잣대로 줄을 세우는 것은 참으로 문제가 있다. 따라서, 현행의 입학시험 제도는 나름대로의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대학은 역시 공부하는 곳이다. 그렇다면 공부 잘하는 줄이 가장 중요할 텐데 이상하게도 공부 잘하는 줄은 만들지 못하게 하고 있다.

대학입시는 각 대학에 맡겨져야 한다. 좋은 학생들을 뽑으려는 각 학교의 노력은 결과적으로 대학 발전의 원동력이다. 지난 80년대에 교복이 "자율화"되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교복을 입을 수 있는 자율은 허용되지 않고 무조건 사복을 입어야 했다. 현재 대학입시도 "자율화"되었지만 이상하게도 수준 높은 학력을 측정하는 것은 "법"에 의하여 금지되고 있다.

특별한 재주가 없는 학생들은 내신과 수능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야 한다. 수학을 "매우" 잘 하여 국제 경시대회에 나갈 수 있는 정도의 학생들은 다른 과목을 못해도 대학에 들어갈 수 있지만, 수학을 "상당히" 잘 하는 학생들은 모든 과목을 다 잘 하고 내신 관리를 철저히 해야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

공부 잘 하는 학생도 그 형태가 여러 가지이다. 학교에서 전 과목을 골고루 잘 하여 항상 일등을 하는 모범생이 있는가 하면, 전체 교과 성적은 떨어지지만 특정 과목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학생도 있다. 현재 수능 방식의 선택형과 단답형과 같은 순발력이 요구되는 시험에 강한 학생도 있고, 이러한 순발력은 약하지만 깊이 있는 사고를 요하는 서술형 문제에 강한 학생도 있다. 또한, 주어진 질문에 말로서 잘 답변하는 학생도 있고 글로서 잘 답변하는 학생도 있다. 이러한 여러 유형의 학생들은 사회에서 모두 각자에게 부여되는 몫이 있을 것이다. 현재의 대학입시는 모범생과 순발력 있는 학생, 혹은 말을 잘하는 학생만을 원하고 있다.

고등학교 일학년 혹은 이학년 때에 학교 공부에 취미를 붙이지 못하다가 졸업반이 되어서야 공부에 관심을 가지고 성과를 나타내는 학생들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내신"의 벽에 부딪쳐서 대학진학이 원천적으로 봉쇄된다. 대학 진학을 원하는 모든 학생들은 고등학교 진학 때부터 모범생이기를 강요받고 있다.

어떤 유형의 학생들을 뽑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각 학교의 선택이다. 내신 성적이 좋은 모범생을 원하는 학교도 있을 수 있고, 수능 성적이 좋은 학생을 원하는 학교도 있을 수 있고,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데에 능한 학생을 원할 수도 있고, 본고사 형태의 서술형 문제에 강한 학생을 원하는 학교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형태의 학생들을 골고루 받아들이기를 원하는 학교도 있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내신, 수능, 구술고사, 본고사 별로 별도의 정원을 정하여 뽑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입시제도는 이러한 대학의 자율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

다. 대학에서

현재, 각 대학은 좋던 싫던 "법으로 제한된 범위의 다양한" 방법으로 학생들을 선발하고 있다. 이렇다면 이들에게 알맞은 다양한 수준의 다양한 교과과목이 제공되어야 할 것이다. 대학에서 학생에게 입학을 허가하는 것은 그 학생에게 그 대학에서 공부할 만한 자격이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 학생들이 필수로 부과된 과목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면 이는 대학이 학생들을 기만한 것이라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고등학교에서 기초실력저하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대학교육을 강화하여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로 나아가고 있다. 실제로 몇몇 대학에서는 이공계에서조차 수학을 선택으로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특히 학부제 실시 이후 두드러진 현상이다. 미국의 경우 공립학교의 수학 교육이 엉망이라는 것이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대학에서 이를 보충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수학관련 강좌 수나 수학교수의 수가 우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각 대학의 수학교수 수를 보면 소위 경쟁국이라는 대만 등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고 있다.

대학에서 기초교육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수학을 비롯한 기초과목을 담당할 교수 수가 대폭 늘어나야 한다. 대한수학회는 1999년 전국의 수학과를 대상으로 교양수학 교육 실태를 조사한 적이 있다. 전국 64개 학교의 74개 수학 관련 학과가 응답한 바에 의하면 일년간 6,939 시간의 교양수학이 개설되어 있는데, 이 중 4,550 시간을 시간강사가 담당하고 있다. 수학과 학부 전공과목조차 총 8,349 시간 가운데 2,388 시간을 시간강사가 담당하고 있다. 전임교수가 연간 18시간을 강의한다고 가정할 때 산술적으로 따져 보아도 당장 (4550 + 2388)/18 = 380 여명의 전임교수가 필요한 것인데, 이는 설문에 응한 학교만 따진 것이다.

시간강사의 원래 취지는, 그 대학에서 특별한 강의를 개설할 필요가 있는데 그 대학에서 강의를 맡은 교수가 없을 때에 위촉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상적으로 개설되는 교양수학의 65% 이상을 시간강사에 의존한다면 이는 대학 운영이 시간강사를 이용한 저임금에 의존한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서 나타나는 부실한 교육은 고스란히 사회가 짊어져야 할 부담으로 남는다.

대학 전임교수들의 의식도 바뀌어야 한다. 설문에 응답한 학과에 소속된 전임교수 수는 총 558 명이었다. 그런데, 같은 조사에서 해당학과에서 몇 명의 전임교수가 부족한가 물었을 때, 응답한 부족 교수의 총수는 고작 182 명이었다. 산술적으로 계산해 본 380 명과는 거리가 멀다. 이는 많은 전임교수들이 "일상적인" 시간강사의 존재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 전임교수야 대학원이나 전공과목을 가르쳐야지 교양수학을 어떻게 가르치느냐 하는 반응도 있었다고 들린다.


5. 끝마치면서

고등학교에서 모든 학생들에게 같은 수준의 같은 내용을 가르치는 것은 모두에게 불행이고 국가적인 낭비이다. 각자에게 적절한 수준의 교과과정을 제공하는 것은 교육담당자의 의무일 뿐 아니라, 자신에게 적절한 교과내용을 배우는 것은 학생 개개인의 권리이다.

각 대학은 자율적으로 신입생을 선발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방법은 되고 어떤 방법은 안 된다면 이는 더 이상 자율이 아니다.

각 대학은 기초 교양교육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학의 운영자와 대학교수들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작년에 국립대학의 전임교수를 대폭 확충한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는데, 이 역시 소위 첨단 산업에 치중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점이 답답할 따름이다.